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연금개혁 법안을 의회 승인 없이 직권으로 통과시키기로 했다. 노동조합 편에 선 야당이 4만 개가 넘는 수정안을 쏟아내며 법안 처리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현지시간)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전날 의회에 출석해 “정부가 연금개혁 법안과 관련해 헌법 49조3항을 발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헌법 49조3항은 ‘의회가 24시간 내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을 경우 정부는 특정 법안을 직권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르피가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 의견이 제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했다.

필리프 총리는 “(연금개혁과 관련해) 의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번 조치의 이유를 설명했다. 프랑스 연금개혁안은 정부가 최근 몇 달간 시민단체 등과 관련 내용을 논의하고 지난달 17일 의회에 상정돼 심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4만1000건에 달하는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개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연금개혁은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단일 체제로 통합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프랑스 노동계는 “연금 수령액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난해 12월부터 이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야권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당 등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도대체 어떤 정부가 민주주의를 약화하는 데 보건 위기를 이용하느냐”고 말했다.

다만 외신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마크롱 정부의 이번 조치는 정치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