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경제가 중국 자본의 도움으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중국 종속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어 간판이 걸린 프놈펜의 거리.
  프놈펜=박동휘 특파원
캄보디아 경제가 중국 자본의 도움으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중국 종속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어 간판이 걸린 프놈펜의 거리. 프놈펜=박동휘 특파원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은 마치 중국의 작은 도시 하나를 옮겨놓은 듯했다. 중국어로 적힌 고층 건물 네온사인이 밤마다 도시를 붉게 물들였다. 프놈펜 핵심 상권인 커핏섬(일명 다이아몬드섬)엔 시노그레이트월이라는 이름의 건설회사가 만리장성을 본뜬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짓고 있다. 중국은 캄보디아에 은인이자 독(毒)이다. 모두가 외면할 때 ‘차이나 머니’는 캄보디아의 유일한 돈줄이 됐다. 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만 해도 훈센 정부가 중국 정부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전염병 방지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캄보디아는 코로나19 청정국?

‘차이나 머니’로 건설되고 있는 프놈펜의 한 고급 주상복합 건물. 프놈펜=박동휘 특파원
‘차이나 머니’로 건설되고 있는 프놈펜의 한 고급 주상복합 건물. 프놈펜=박동휘 특파원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는 중국과의 ‘하늘길’을 여전히 열어 놓고 있다. 춘제(설) 연휴 기간이던 1월 25일에 중국인 단체관광객 입국만 차단했을 뿐이다. 심지어 훈센 총리는 지난달 5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는 등 양국 우의를 과시했다.

춘제 연휴에 중국인들이 프놈펜과 남부 휴양지인 시아누크빌을 대거 방문했음에도 1일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단 1명이다. 지난달 13일엔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가 남부의 ‘차이나 시티’인 시아누크빌에 입항하도록 허가해 논란을 일으켰다. 승객 중 1명이 감염자로 밝혀지면서 캄보디아가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프놈펜에 있는 한인 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발병 이후 우한에서 캄보디아로 입국한 중국인만 3800명에 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확진자 숫자에 대한 정부 통계를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종수 KOTRA 프놈펜무역관장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에 중국인 관광객이 끊기거나 부동산을 사러 오는 중국인 사업가들이 프놈펜에 못 들어오면 캄보디아 경제는 그야말로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 점령당한 경제

'차이나 머니' 공습…프놈펜 한복판엔 '만리장성' 아파트
캄보디아의 중국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약 21만 명(2018년 말 기준)에 달한다. 중국인은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의 부동산을 집중 매입하고 있다. 한국 업체가 맡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건설이 중단돼 작년 초까지 흉물로 남아 있던 프놈펜의 첫 고층 빌딩인 골드마크시티는 최근 중국 업체가 인수해 공사를 재개했다. 프놈펜공항엔 아예 중국어로 된 부동산 거래 전단이 비치돼 있을 정도다. 중국인 투자자들은 캄보디아에 와 보지도 않고 고층 오피스 빌딩과 고급 아파트단지에 ‘묻지마 투자’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인들은 캄보디아의 유일한 국제 무역항인 시아누크빌을 거대 차이나 시티로 조성했다. 서준용 농협파이낸스캄보디아법인장은 “시아누크빌에 있는 지점 임차료가 2016년 말까지만 해도 월 750달러(약 90만원)였다”며 “중국 자본 진입 후인 작년 말에 재계약하려고 했더니 월 5000달러(약 605만원)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한 건 2016년께부터다. 캄보디아 정부는 2015년 3월 2025년을 목표로 새로운 ‘산업발전전략’을 내놓으면서 시아누크빌을 특별경제구역(SEZ)으로 지정했다. 당시 훈센 총리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제조업 선진국을 초청해 규제 완화 등 향후 10년의 비전을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2013년 24.1%에서 2025년 3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다.

캄보디아의 요청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나라는 중국이다.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인 중국 정부는 무역항인 시아누크빌을 중국~라오스~캄보디아 내륙을 거쳐 남중국해로 나가는 관문으로 삼으려 했다.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을 잇는 고속도로도 중국 업체가 건설 중이다.

차이나 머니가 밀려온 덕분에 캄보디아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14년 167억달러(약 20조2000억원)였던 GDP는 지난해 270억달러(추정치·약 32조7000억원)로 증가했다. 정부 세입은 2014년 28억달러에서 2018년 47억달러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친중(親中)으로 고립될라

중국 자본 유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애초 캄보디아 정부는 봉제, 의류에 집중돼 있던 산업 구조를 좀 더 고도화할 외국인 투자를 원했으나 차이나 머니는 대부분 부동산과 도박에 집중됐다. 해외 도피처를 찾던 중국의 검은돈 중 상당액이 캄보디아로 향했다.

지난해 2월엔 글로벌 돈세탁 감시기구인 금융행동태스크포스(FATF)가 캄보디아를 돈세탁 의심국 목록에 올리겠다고 경고했다. 훈센 총리가 중국의 검은돈 세탁처로 지목된 온라인 도박을 지난해 전면 금지하고, 프놈펜 카지노 도박장을 말레이시아계 한 곳만 남기고 모두 쫓아낸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지나친 친중 정책은 미국 등 서방 세계를 자극했다. 시아누크빌 인근 캄포트 항구에 중국 해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설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공식 의혹을 제기했을 정도다. 캄보디아는 인권 탄압 문제로 유럽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유럽의회는 2017년 벌어진 야당 지도자 투옥과 망명 등에 항의해 캄보디아에 제공하던 무역특혜조치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12일 발표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캄보디아에서도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새로운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속첸타 소피아 캄보디아 총리실 장관(캄보디아 개발위원회 사무총장)은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원스톱으로 정비하는 등 투자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조치를 담고 있다”며 “새로운 법안이 곧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훈센 총리는 지난해 4월 ‘프라이빗 섹터 포럼’을 열어 캄보디아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민원을 직접 듣기도 했다. 근로자의 연간 휴일도 28일에서 22일로 축소했다.

1인당 GDP가 1563달러(2018년)에 불과한 세계의 빈국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 각국과의 투자유치전(戰)에서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세계 최하위권(국제투명성기구의 2019년 부패인식지수가 180개국 중 162위)인 고질적 부패, 프놈펜마저 하루 걸러 정전이 불가피할 정도로 열악한 전력 사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프놈펜=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