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대예배까지 취소…정부, 감염·사망자 숫자만 공개
교민·주재원도 사회도 불안 커져…"항공편 끊겨 철수도 어려워"
[테헤란 르포] "전쟁보다 더 긴장"…마스크 찾아 '발동동'
"전쟁은 설마했지만 전염병은 당장 내게 닥칠 일이니까요"
중동에서 이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진원'으로 떠오르면서 수도 테헤란 시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이란은 지난달 미국과 전쟁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겨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지만 이번 달엔 전염병에 맞닥뜨리게 됐다.

테헤란 미르다마드 거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파르샤 씨는 27일 "미국과 전쟁을 하더라도 이란은 넓기 때문에 민간인 지역은 큰 피해가 없겠지만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어 체감하는 위험은 미사일보다 커 긴장된다"라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19일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공개됐다.

이란 보건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후 인명피해가 빠르게 늘어 27일 현재 확진자가 141명, 사망자가 22명으로 늘었다.

테헤란 시민들은 무엇보다 유독 높은 치사율 때문에 이란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구심이 크다.

전 세계 평균이 현재 3% 안팎인 데 비해 이란에서는 15%가 넘는 탓이다.

택시기사 모하마디 씨는 "검사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숫자를 정부가 속이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사망자는 감출 수 없으니 확진자를 줄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한국과 달리 주별 확진자와 사망자 수만 공개하고 일자, 시간별 동선을 알리지 않아 일반 시민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만 커지고 있다.

이란의 전염병 확산세가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제재로 약화한 의료 체계때문이다.

미국은 2018년 5월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그해 8월부터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최대 압박' 전략을 이란에 가했다.

의약품, 의료장비 등은 인도적 품목이어서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금융 제재로 이란에 수출한 대금을 회수하기 어렵게 되자 이란에 의료 분야 제품을 수출했던 유럽 회사들이 사실상 거래를 끊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2010년대 초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밀수된 의약품이 품질 검증이나 의사의 처방없이 지하시장에서 암거래되기 시작했다.

[테헤란 르포] "전쟁보다 더 긴장"…마스크 찾아 '발동동'
코로나19 발병 사실이 알려지자 테헤란 시내 약국에서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가 동이 났다.

약국 문 앞에서는 '마스크가 없다'라는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테헤란에 사는 한 한국인은 "테헤란은 공기 오염이 심해 마스크를 그나마 상비해둬 지금 쓰고 있다"라며 "시중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일회용인데도 버리지 못하고 사용 뒤 말려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약국을 통해 마스크 판매를 중단하고 정부가 무료 배포하겠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정부가 나눠주는 마스크를 받은 시민은 찾기 어려웠다.

이란 정부는 방위산업체까지 가동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24시간 생산 중이라면서 민심의 동요를 막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무슬림의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인 금요대예배도 이번 주 취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란 보건부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자제하라면서 26일 이런 조처를 발표했다.

신정일치의 강고한 종교국가인 이란에서 금요대예배까지 취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도부가 현재 위기를 비상하고 엄중히 본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사재기와 같은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테헤란 대학에 다니는 하셰미 씨는 "이란 국민은 전쟁, 제재와 같은 위기를 오랫동안 겪어 이에 익숙해 웬만해선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테헤란 르포] "전쟁보다 더 긴장"…마스크 찾아 '발동동'
약 200명 정도인 교민 사회도 걱정이 커졌다.

테헤란의 한 주재원은 "이란이 코로나19의 중심지가 되면서 각국이 항공노선을 중단해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가기 매우 어려워진 데다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곳이 많아 제3국으로도 피하기 힘들어졌다"라며 "다들 어렵겠지만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이란에 사는 한국인'이 최악의 경우 같다"라고 푸념했다.

다른 주재원은 "한동안 한국에서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일부 식당에서 한국인 출입을 막았고, 길을 가다 '코로나'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라며 "이제 이란도 심각해져서 서로 할 말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약 30명이 출석하는 테헤란 한인교회도 28일 금요예배를 취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