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케이맨제도를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조세 비협조국)로 지정했다. 영국의 해외 영토가 EU 블랙리스트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투자 확대를 위해 대대적인 조세 혜택을 준비 중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EU의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EU 재무장관들은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케이맨제도를 비롯해 팔라우, 파나마, 세이셸 등 4개 지역을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의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부위원장은 “이들 국가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당한 세금을 걷는데 비협조적”이라며 “약속했던 조세 개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EU가 지정한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는 미국령 사모아, 피지, 미국령 괌, 사모아, 오만, 트리니다드 토바고, 바누아투,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기존 8개 지역을 포함해 총 12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EU는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하도록 돕는 국가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해 2017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다고 당장 EU 회원국들의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면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고, EU 기업들과 거래할 때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EU는 블랙리스트로 지정된 지역이 세제 개혁을 약속하면 리스트에서 제외해주고 있다.

EU는 지난해 3월 발표 때는 영국령 케이맨제도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당시 EU는 영국을 비롯한 28개 회원국은 조세 기준을 충족해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이 지난달 31일 EU를 탈퇴하자 케이맨제도를 곧바로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 돔브로브스키스 부위원장은 이날 “EU 27개 회원국은 모두 심사절차의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U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의도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영국은 투자 유치를 위해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파격적인 조세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 투자 유치 규모에서 EU 회원국들이 영국에 뒤질 수 있다는 우려가 EU 안팎에서 제기된다.

한국은 2017년 EU의 첫 지정 당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당시 EU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투자지역과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조세혜택을 주는 것은 국내외 기업 간 차별 또는 거주자와 비거주자 간 차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제도 개선을 약속했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 50일 만에 제외됐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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