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통신 업체인 중국 화웨이를 향한 압박 공세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다. 화웨이의 부품 공급처부터 제품 생산 공장까지 미국산 기술과 장비를 쓰기 어렵게 할 방침이다. 대만 TSMC를 타깃으로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 규제는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웨이에 적지 않은 충격이 될 전망이다.
美, 화웨이 압박 강화…핵심 파트너社 대만 TSMC 납품 막는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상무부가 화웨이에 부품을 파는 제3국 기업과 반도체칩 공장 등을 대상으로 규제 강화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는 제3국 기업 제품에 허용하는 미국 부품의 적용 비중을 25%에서 1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반도체 업체는 미국산 부품 비중이 25%가 안 되는 경우 미 당국 허가 없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이 비중을 10%로 낮추면 상당수 화웨이 하청 업체들이 기존 방식으로 납품을 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WSJ는 “이번 조치가 화웨이의 핵심 파트너사인 TSMC를 겨냥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반도체칩을 설계하지만, 생산은 대부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위탁한다. TSMC의 전체 매출 중 10%가량이 하이실리콘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의 경우 이미 화웨이와 거래 시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화웨이가 미국 반도체 기업과 거래하기 어려운 가운데 TSMC까지 제한을 받으면 화웨이의 부품 조달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으로 거래처를 돌릴 수 있지만, 업계에선 SMIC의 미세 공정 기술력이 TSMC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상무부는 이른바 ‘외국 직접제품 규칙’의 개정 초안도 작성하고 있다고 WSJ가 보도했다. 이 규칙은 군사적 쓰임새가 있거나 국가 안보와 관련 있는 미국의 기술·제품에 대해 외국 기업의 사용을 제한한다. 새 개정안은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산 제조 장비를 사용할 경우 미 상무부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한 관계자는 WSJ에 “개정안이 발효되면 미국 장비를 쓸 경우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공장이든 미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화웨이에 납품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미국 정부 목표는 전 세계 기업이 화웨이를 위한 제품 생산을 멈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는 “이번 조치는 몇 주 전부터 논의됐고, 최근 정식으로 제안이 나온 것”이라며 “미국 기업이 해외 공장을 통해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을 일부 제한하는 별도 규정도 함께 발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칩 수출 관련 추가 제한 조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28일 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외신들은 미국이 코로나19 여파로 화웨이가 위기를 겪는 와중에 이 같은 조치를 들고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정보 업체 캐널리스는 올 1분기 중국 내 스마트폰 출하량이 작년 동기 대비 50%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다. 공장 가동률이 급감하고 소비자 수요가 줄면서 화웨이 실적도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WSJ는 미국이 최근 중국의 ‘기술 굴기’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5일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방산 업체 사프란의 합작사인 CFM에 대(對)중국 제트엔진 수출을 불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제조업 발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