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의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표결은 싱겁게 끝났다. 표결 시작부터 끝까지 2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집권 공화당 내 이탈표도 한 표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강한 ‘당 장악력’을 과시하며 그동안 재선 가도에 발목을 잡던 탄핵 족쇄에서 풀려났다.

이날 탄핵 표결은 오후 4시께 시작됐다. 상원의원 100명이 전원 참석했다. 투표는 호명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유죄’와 ‘무죄’ 중 하나를 선택한 뒤 자리에 앉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원이 제시한 두 가지 탄핵 사유 중 권력남용은 찬성 48 대 반대 52, 의회방해는 찬성 47 대 반대 53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하원이 탄핵조사를 개시한 지난해 9월 24일 이후 134일 만에,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한 지난해 12월 18일 이후 49일 만에 탄핵정국이 종료됐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부적절한 통화’를 했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대가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8일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과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달랐다. 공화당은 상원 다수당 지위를 활용해 ‘속전속결식 탄핵 부결’을 추진했고 결국 이를 관철했다. 민주당이 요구한 핵심 증인 채택은 공화당 반대로 상원에서 모두 부결됐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지만, 정치적 갈등만 커졌을 뿐이다. 이날 상원 표결도 철저히 ‘당파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 47명(무소속 1명 포함)은 전원 탄핵에 찬성했지만 공화당 소속 53명은 한 명을 빼곤 모두 탄핵에 반대했다. 공화당 의원 중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밋 롬니 의원 한 명만 권력남용 혐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 이탈표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공화당이 이미 ‘트럼프당’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내 지지율은 95%를 넘나든다. 공화당 의원들이 향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표를 던지기 어려운 구조다.
공화당 이탈표는 롬니뿐…트럼프, 黨장악력 앞세워 재선 레이스 박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러시아 스캔들(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의 유착 의혹)’에 시달렸고 거기서 벗어난 뒤 얼마 안 돼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발목 잡혔다. 이날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도 풀려나 재선 행보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안 부결 직후 트윗을 통해 “탄핵 사기에 대한 미국의 승리를 논의하기 위해 내일 낮 12시에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주도한 탄핵 추진을 ‘사기’라고 규정하며 반격을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둘러 면죄부를 주기 위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증인 채택을 거부했다고 비난해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법적으론 트럼프 대통령의 무죄가 확정됐지만 정치적 공방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우크라이나 대하소설’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볼턴의 회고록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 증인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