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시설의 일상…내선전화로 체온 보고, 도시락·물은 문밖 의자에
관리자들도 방 안에 안 들어와…문 열려 있어도 나가고 싶은 마음 안 생겨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유선 전화기가 울려댑니다.

매일 아침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오는 '모닝콜'입니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체온이 얼마냐 묻습니다.

조금 전 제가 가진 체온계로 잰 온도는 36.8도. 그대로 상대방에게 알립니다.

이렇게 제가 있는 집중 관찰 시설 609호실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오늘은 2일 일요일. 지난달 30일 이곳으로 옮겨왔으니 이제 나흘째가 되는 날입니다.

며칠을 지내면서 여기 운영 방식을 지켜보니 철저한 비접촉 방식의 운영 원칙이 눈에 띕니다.

이곳 운영 요원들은 '관찰 대상자'가 머무는 내부 공간에 절대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오전, 오후 하루 두 번의 체온 점검은 '관찰 대상자' 본인이 직접 합니다.

전화가 방으로 걸려오면 그 결과를 말해 주는 방식입니다.

한 번은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저의 우한 체류 상황을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이 의사는 제가 우한에서 상하이로 돌아온 지난달 22일로부터 14일간 이상이 없다면 2월 5일께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제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의심할 만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요.

매끼 식사 제공도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방역복을 입은 이곳 운영 요원들은 얼굴엔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외부 업체에 주문한 도시락을 각 방문 앞에 놓인 작은 의자에 놓아둡니다.

복도에 밥을 놓고 지나가면서 '아침밥이요(朝飯)!'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나면 잠시 뒤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잠시 문을 열고 나가 의자 위에 놓인 밥을 들고 얼른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곳 시설은 여관급 호텔 하나를 통째로 '징발'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보니 '서비스'라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방바닥을 걸레로 닦고, 때가 되면 제 옷과 수건을 빨아 스탠드 등에 걸어 말립니다.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많은 분이 걱정해 주셨는데 저의 몸 상태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여기 집중 관찰 시설로 옮기고 나서 매번 체온을 잴 때는 시험을 치는 긴장된 기분입니다.

귀에 체온계를 대고 결과가 나왔음을 알리는 '삐' 소리가 날 때까지 몇 초 안 되겠지만 길게만 느껴지곤 합니다.

여기 있는 동안 가장 높을 땐 제 체온이 37.0도 정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정상 범위라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길 텐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0.1도가 오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우한 체류 이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모아놓은 시설에 있다고 생각하니 심리적으로 다소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저는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오는 옆방 사람을, 그 방에 있는 사람은 저를 두려워하겠지요.

방문이 잠겨 있지는 않지만 밥을 가지러 나갈 때가 아니면 누구도 방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 경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점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날 발표된 네이멍구자치구의 한 특이 환자의 사례를 보면, 최근 집밖에 전혀 나가지 않은 4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

이 환자 윗집에는 먼저 확진 판정을 받은 이가 살았습니다.

공동주택의 층간 전파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물론 그들 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좀 더 정확히 알아봐야 하겠지요.

제가 여기 머무르고 있다 보니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격리시설에 있는 우한 철수 교민들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전에 뉴스로 남들의 격리 생활 얘기를 들었을 때는 '호캉스'(호텔+바캉스) 같은 게 아니겠냐고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니 '정서적 소모'가 꽤 심하네요.

그렇지만 많은분들이 격려를 해주시는 바람에 이곳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격리기' 1편이 나가고 나서 많은 지인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미국에 계신 독자님으로부터도 힘내라는 격려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제 소식이 알려진 첫날에는 하도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 한나절 취재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지요.

상하이 교민들께서는 저를 비롯한 상하이지역 격리 시설 내 국민들에게 컵라면에 즉석밥, 김 같은 먹을 것을 보내주셨습니다.

근 20년 전 공군 훈련소 시절 게 눈 감추듯 먹었던 통닭이나 피자를 떠올리게 할 만큼이나 맛있고 값진 음식으로 느껴집니다.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한국 고향에 보내 놓은 아내와 두 아이와의 영상 전화도 이곳 생활의 큰 기쁨입니다.

강아지 같은 막내 딸아이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만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만 곧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던 모든 것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많은 지인께서 '넘어진 김에 좀 쉬어가라'는 감사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최근 관심이 컸던 우한 교민들의 철수 상황을 중국 쪽에서 맡았던 터라 여기 오고 나서 이번 주말까지 하루도 못 쉬고 백방으로 전화를 돌리고 기사를 썼던 것 같습니다.

[특파원 中격리생활기] ② '삐~' 체온계 울리면 마음도 '철렁'
오늘은 좀 여력이 나 700명이 넘은 우리 교민들의 성공적인 철수 작전의 숨은 주인공인 우한 총영사관의 정다운 영사의 이야기를 취재해 기사로 작성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저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에 잘 도착하신 우리 우한 교민분들 모두 14일의 격리 기간을 잘 보내고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또 우한에는 아직 최소 130명이라는 적지 않은 우리 교민들이 남아계십니다.

이분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속에서도 한 분도 아프시지 말고 행복한 일상을 되찾으시길 기원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