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는 전통적 외교노선인 ‘고립주의’에 기반한 역사적 뿌리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이 EU 규제에서 벗어나야 과거 영광을 회복할 수 있다는 ‘영국 우선주의’도 브렉시트를 결정한 배경이다.

대영제국에 바탕 둔 '고립주의'…"우린 유럽이 아니다"
EU의 전신은 1958년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국 주도로 출범했다. 영국은 15년이 지난 1973년에야 EEC에 가입했다. 1960년대까지 영국의 외교노선은 ‘위대한 고립’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18세기부터 제국으로 부상한 영국은 유럽 대륙의 세력 균형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독자 외교노선을 추진했다. “우리는 유럽과 함께 가지만 유럽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발언이 영국의 외교노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문제는 1960년대부터 영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불거졌다. EEC는 전후 복구에 성공해 성장을 거듭했다. 영국은 유럽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자 EEC에 1963년, 1967년, 1973년 세 차례에 걸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프랑스가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이 미국과 한편이 돼 유럽을 넘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1973년 EEC에 간신히 가입한 지 불과 2년 만에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는 EEC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를 했다. 오일쇼크로 글로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EEC로부터 얻을 경제 혜택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때는 국민의 67%가 잔류를 선택했다.

이후에도 위대한 고립이라는 기존 외교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조약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경제 주권을 내세워 유로화 사용을 거부하고 파운드화를 유지했다.

잠잠하던 EU 탈퇴론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13년이다. 당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 회의론자들의 표를 의식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2016년 6월 23일 치러진 투표에서 국민의 51.9%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EU 회의론에 더해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EU의 각종 규제 등에 대한 불만이 겹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영연방 일부인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로 인한 영국 정치권의 갈등으로 브렉시트 합의안은 잇달아 하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보리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2022년 예정된 총선을 3년 앞당겨 치르는 초강수를 뒀다. 3년 넘게 이어진 브렉시트 논란에 지친 영국 국민은 지난달 12일 치러진 총선에서 존슨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 표를 몰아줬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