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어렵게 결단을 내린 이후에도 여러 가지 변수에 부딪혀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업을 계속 경영해야 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사용자 계정관리 서비스 기업인 옥타(Okta)의 토드 매키넌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난관을 이기고 창업으로 크게 성공한 경우다. 그는 전도유망한 정보기술(IT) 기업인 세일즈포스를 박차고 나와 옥타를 설립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 기업 가치가 156억달러(약 18조원)에 이르는 옥타는 실리콘밸리에서 ‘클라우드업계의 꿈’으로 통한다. 옥타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 고객 수는 지난해 1월 기준 이미 1억 명을 넘어섰다.

세일즈포스의 유망주, 창업을 선택하다

매키넌은 2009년 옥타를 설립하기 전까지 세일즈포스에서 약 6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현재 세계 1위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는 당시에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장성이 좋은 기업으로 꼽혔다. 매키넌은 세일즈포스 재직 당시 탁월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사내에서는 차기 CEO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매키넌이 창업을 선택한 건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앞으로 여러 가지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매키넌은 CNBC 인터뷰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을 창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며 “향후 여기서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창업하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에서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세일즈포스라는 유망한 기업을 자진 퇴사하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창업을 극구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부터가 문제였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딸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매키넌은 당뇨병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좋은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기업을 떠난다는 건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에는 서비스를 구상하면서 고객을 유치하느라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옥타의 사업성을 눈여겨본 여러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됐다. 회사를 설립한 지 약 1년이 지난 2010년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츠로부터 1000만달러(약 116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매년 여러 벤처 투자사들로부터 더 많은 투자금을 받았다. 옥타는 사업 시작 후 6년 동안 총 2억2930만달러(약 2660억원)를 끌어모았다.

‘개인정보 보호 특화’로 틈새시장 공략

옥타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오픈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서비스 기업이다. 오픈 API란 특정 프로그램의 기능이나 데이터를 다른 프로그램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미리 정한 통신 규칙을 지칭하는 용어다. 서로 다른 회사의 앱(응용프로그램) 간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오픈 API는 주로 핀테크와 같은 금융업 분야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옥타는 서로 다른 앱끼리 오픈 API를 통해 사용자 정보 등을 공유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보안 문제 해결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앱 간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믿을 만한 개인정보 보안 서비스가 필요하게 된 기업들이 옥타를 찾고 있다. 옥타의 주요 고객사로는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 나스닥 증권거래소,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 등이 있다.

기업 이름인 옥타는 기상용어로, 운량(雲量)을 재는 단위다. 0옥타는 구름이 전혀 없는 청명한 날씨를, 8옥타는 반대로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흐린 날씨를 의미한다. 클라우드(구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컴퓨팅 기업이라는 뜻에서 착안했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매키넌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옥타가 성공하게 된 비결을 묻는 말에 “타이밍이 가장 중요했다”고 답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2009년은 미국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업계가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때다.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이때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시기를 전후해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옥타의 성공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정보보안 부문에 특화한 덕이 컸다.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IT 서비스가 활황을 보이면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북과 같은 IT 대기업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옥타와 같은 정보보안 기술 전문 기업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옥타의 실적은 갈수록 더 탄탄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거래되는 옥타 주식 가격은 지난 2년 동안 5배 이상 급등했다.

매키넌이 좋은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개인적 노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매키넌은 원래 엔지니어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다. 세일즈포스에서 빨리 관리자로서 자리 잡고자 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로 좀 더 일해보는 게 나중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한 상사의 조언에 따라 엔지니어로 계속 남아있기로 선택했다. 매키넌은 “만약 그때 너무 빨리 관리자가 됐더라면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며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계해 본 경험은 추후 그가 옥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