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을 앞두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했다. 작년 8월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한 지 5개월여 만이다. 양국 간 갈등이 관세뿐 아니라 환율 등 경제 전반에서 완화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외신들은 미국의 이 같은 ‘선물’에 화답해 중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상품을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는 13일(현지시간)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를 발표하고 중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8월 지정한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하기 이틀 전에 이뤄진 조치다. 류허 국무원 부총리를 대표로 한 중국 대표단은 서명을 위해 이날 워싱턴DC에 도착했다.

미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뒤 협상을 통해 1단계 무역합의에 이르렀다”며 “중국이 이 합의에서 경쟁적 통화 절하를 삼가고 이의 이행을 강제하는 약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이 환율과 관련한 정보들을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미 정부는 종합무역법(1988년)과 교역촉진법(2015년)에 따라 환율조작국을 지정한다. 미국은 환율조작국에 시정을 요구하다 1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미 기업 투자 제한 등 제재에 나설 수 있다.

교역촉진법에는 △지난 1년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2%를 초과하는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 △12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외환을 순매수하는 지속적·일방적 외환시장 개입 등 환율조작국 지정을 위한 세 가지 기준이 명시돼 있지만, 종합무역법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미국은 작년 8월 종합무역법에 따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환율보고서는 통상 매년 4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 발간한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8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뒤 지금까지 환율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1단계 무역협상에서 환율보고서를 지렛대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총 86쪽으로 알려진 1단계 무역합의문엔 환율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런 성과를 얻어내자 한발 물러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무역합의를 이틀 앞두고 중국에 한발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교역 여건이 미국에 우호적인 상황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도 ‘환율 휴전’을 끌어낸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위안화 환율은 지난해 8월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 ‘포치(破七)’가 발생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작년 9월 이후 위안화 가치는 조금씩 절상돼왔다. 특히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을 앞두고 강세가 이어져 이날 역외시장에서는 위안화가 달러당 6.8위안대로 복귀했다. 달러당 6.8위안대에 안착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관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이뤄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미국 폴리티코는 중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상품을 추가 구매하는 내용이 무역합의에 포함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이들 매체는 미 행정부 관료 등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단계 무역합의에 중국이 네 가지 부문에서 향후 2년간 미국산 상품 2000억달러어치를 추가로 구매한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공산품 75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농산물 400억달러, 서비스 350억~400억달러로 구매 목표가 설정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공산품 약 80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농산물 320억달러, 서비스 350억달러 등으로 구매 규모를 약간 다르게 보도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