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2세가 자신의 가족에게 수십년간 씌워진 범죄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역사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아들 "역사책 수정해야"
11일 GMA 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르코스 2세는 전날 "우리가 훔쳤다거나, 우리가 저질렀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는 법원의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것으로 입증된 것이 여전히 교과서에 나와 있어 우리 어린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누구에게든 살인자, 도둑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려면)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2세의 이 같은 주장은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이 최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잇따라 기각된 데 따른 것이다.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필리핀 대통령 직속 '좋은 정부위원회'가 마르코스 일가에게 제기한 재산환수 소송 4건을 잇달아 기각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된 이들 소송 가액은 모두 3천32억6천만페소(약 6조9천700억원)다.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계엄 시절 고문과 살해 등으로 수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마르코스 일가가 집권 당시 부정 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7천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재산은 1천726억페소(약 3조9천억원)에 그친다.

이와 관련해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2018년 11월 최고 징역 7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을 허가받아 불구속 상태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뿐 마르코스 일가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인권 탄압과 부패 행위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은 마르코스 일가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멜다는 1992년 귀국해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3연임 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딸 이미는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역임한 뒤 올해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주지사직은 이멜다의 손자인 매슈 마르코스 마노톡이 승계했다.

마르코스 2세도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거쳐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일가의 지원을 받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마르코스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허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