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미국 책임 여론 역전"…혁명수비대 위상 타격
여객기 격추 '치명타' 맞은 이란…대미항쟁 급격히 위축될 듯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대비 항전'의 기세를 올렸던 이란이 민간 여객기 격추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적의 크루즈미사일로 오인했다.

미국이 일으킨 긴장 상황에 전시나 다름없었다"라고는 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란으로서는 치명타를 맞은 셈이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해 말부터 '주고받기' 식으로 공방을 벌였다.

이라크 내 미군기지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 사망(12월27일), 미군의 이라크 친이란 시아파 기지 공습으로 25명 사망(12월29일),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난입(12월31일)이 이어졌다.

이후 수위는 더 높아져 이란 군부 거물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미군에 폭사(1월3일),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 기지 2곳 미사일 공격(1월8일)이 뒤따랐다.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국과 이란의 긴장은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사안이지만 미국에 다소 불리하게 국제 여론이 형성되는 분위기였다.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이란과 전면전을 우려해 접었던 '솔레이마니 살해'라는 카드를 선택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리한 판단이 중동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또 이런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2018년 5월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파기였다는 다는 게 국제 여론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순식간에 역전됐다.

8일 새벽 이란의 미사일 공격 와중에 176명이 탄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추락했고, 이 원인이 혁명수비대의 방공 미사일이었다고 이란이 11일 시인하면서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11일 "전시나 다름없는 최고 수위의 경계태세였던 상황에서 적(미국)이 테헤란을 향해 발사한 크루즈미사일로 오인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객기 격추 소식을 들었을 때 죽고 싶었다.

나의 목은 머리카락보다 가늘어졌다.

모든 처분을 달게 받겠다"라며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했다.

이란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수비대의 고위 장성이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납작 엎드린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만큼 이란도 이 사안을 매우 엄중한 위기로 받아들인다는 방증이다.

혁명수비대 대공방어사령부는 지난해 7월 이란 영공을 넘나든 미국의 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자체 개발한 대공 방어 미사일 시스템 '세봄 호르다드'로 격추하면서 대내외에 위력을 과시했다.

이란의 대공 방어력을 의심했던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도 당시 격추 사건에 매우 주목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지상전 대신 전투기나 무인기, 미사일을 동원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란의 대공 방어력의 수준은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는 글로벌 호크로 정밀성과 파괴력을 과시했지만 이번 여객기 오인 격추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게 됐다.
여객기 격추 '치명타' 맞은 이란…대미항쟁 급격히 위축될 듯
지난해 11월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지지도가 떨어진 이란 지도부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에 대응해 미사일 보복을 단행하면서 반미 여론을 동력으로 인기를 회복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번 사건은 이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혁명수비대는 9일 미군 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본격적 공격의 서막이라면서 중동 내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추가로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여객기 격추로 반미 항쟁을 주도해야 하는 혁명수비대의 위상과 활동이 당분간 제한될 전망이다.

사건의 책임을 물어 대규모 물갈이 인사와 체계 개조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이런 약점을 만회하고 시선을 분산하려고 대리 세력을 통해 중동 내 미국에 대한 추가 군사 행동을 감행한다면 이란에 대한 국제 여론은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이란의 약점을 쥐게 된 미국도 대이란 압박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혁명수비대의 해외 무장조직 지원과 작전을 총괄했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부재에다 돌이킬 수 없는 민항기 격추까지 겹쳐 혁명수비대는 1979년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