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뒤집기 노리는 국민당 한궈위, 100만 지지자 총동원령
'늙어가는 국민당'의 고민 보여주듯 중·장년층이 많아
[르포] 대만 총통부 앞 집결한 수십만 한궈위 지지자들(종합)
대만 대선을 이틀 앞둔 9일 밤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중심인 총통부 앞 거리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로 온통 뒤덮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광화문 광장과 같은 카이다거란(凱達格蘭) 거리에 저녁 무렵부터 많게는 수십만명으로 추산되는 대만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후보 지지자들이 운집했다.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총통 후보인 차이잉원 총통에 밀려 열세인 한 후보 측이 '100만 지지자 동원령'을 내리면서 막판 판세 뒤집기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한 손에 소형 청천백일기를 든 50대 시민 린(林)씨는 "차이잉원 총통 집권 4년 이룬 성과가 무엇이냐"며 "한궈위가 당선되면 양안 관계(중국 본토와 대만 관계)가 안정될 것"이라며 "양안은 한 가족이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날 유세 현장에는 한쪽 끝에서 다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지자들이 대거 운집했다.

주최 측은 이날 100만명이 넘게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한 후보는 "중화민국과 자유·민주에 이미 퇴로가 없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유세에는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롄잔(連戰) 전 부총통 등 국민당의 원로 인사들도 가세했다.

[르포] 대만 총통부 앞 집결한 수십만 한궈위 지지자들(종합)
국민당은 '대만안전, 인민유전(臺灣安全, 人民有錢)'을 이날 행사의 대표 구호로 내세웠다.

중국 본토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경제를 일으켜 대만 시민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뜻이다.

이는 다분히 대만 독립 성향으로 중국 본토와 껄끄러운 관계인 집권 민진당을 겨냥한 것이다.

유세장에 나온 시민들은 도처에서 '한궈위 당선'을 목청껏 외쳤다.

올해 대선에서 한 후보는 작년 여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전무하다시피 하던 한 후보는 2018년 11월 대만 지방선거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다.

국민당 내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던 그는 민진당의 20년 아성인 가오슝(高雄) 시장에 도전했다.

누구든 국민당 간판으로는 당선이 불가능한 자리로 여겼기에 한궈위에게 자리가 돌아간 것이다.

조직도 돈도 없던 한 후보는 서민층의 눈높이에 맞춘 소탈한 이미지를 앞세워 가오슝 시장 당선에 성공하면서 일약 중앙 정치 무대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시장 선거 때 그의 대표적인 선거 구호는 '떼돈을 버는 가오슝을 만들겠다'였다.

일각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포퓰리즘적인 구호를 앞세운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대중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에 열광했고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처럼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도 생겨났다.

하지만 작년 연초부터 본격화한 중국의 대대적인 대만 압박은 전통적으로 양안 관계를 중시하는 국민당의 입지를 크게 좁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6월부터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촉발된 것을 계기로 대만에서는 중국이 대만에도 적용하려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국민당의 정치적 공간은 더욱 제약됐다.

지방선거 패배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던 차이 총통은 이 같은 상황을 영리하게 파고들어 대선판을 중국 본토와 대만의 주권 수호 세력 간의 대결 구도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르포] 대만 총통부 앞 집결한 수십만 한궈위 지지자들(종합)
작년 연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가 차이 총통을 앞서갔지만 홍콩 사태로 대만에서도 반중 정서가 고조되기 시작한 작년 여름 무렵부터는 차이 총통에게 지지율 역전을 당했고 현재 격차는 30%포인트대까지 벌어진 상태다.

장촨셴(張傳賢) 대만 중앙연구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차이 총통과 한 시장의 지지율 격차는 민중이 차이 총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시장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달리 말하면, 민진당이 아주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당이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대체로 50% 안팎으로 4년 전인 2016년 대선 때 차이 총통의 지지율 56.12%에 못 미친다.

[르포] 대만 총통부 앞 집결한 수십만 한궈위 지지자들(종합)
2016년 대선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는 31.04%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의 지지율은 22%가량으로 4년 전 대선 득표율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국민당의 '노령화'도 장기적인 추세를 놓고 봤을 때 당에 큰 위기 요인으로 지적된다.

국공내전에서 대만으로 패주한 국민당의 주력 지지층은 중장년층이다.

반대로 집권 민진당은 젊은 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949년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이들을 가리키는 '외성인'(外省人)들조차도 1세대들이 점차 사라지고 후대로 넘어가면서 중국 본토와의 유대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대만의 유명 정치 평론가인 판스핑(范世平) 대만사범대 정치학연구소 교수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대만 젊은이들은 '태생적인 독립파'들"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이날 국민당의 타이베이 초대형 유세 현장에서도 주된 참가자들은 중·장년층이었고 대학생 등 20대 유권자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지극히 어려웠다.

또 어린 자녀를 동반한 젊은 부부의 모습 대신에 어린 손주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르포] 대만 총통부 앞 집결한 수십만 한궈위 지지자들(종합)
하지만 한 후보 진영은 실제로는 한 후보와 국민당을 지지하지만 높은 반중 정서 때문에 드러내고 지지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샤이 한궈위'까지 합쳤을 때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당이 1949년 대만으로 패주하고 나서 2000년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당선될 때까지 국민당은 50년여년간 수권 세력이었다.

국민당의 지역 당 조직의 힘은 민진당에 비해 여전히 강세라고 대만의 정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당은 이날 타이베이 초대형 유세를 통해 위축된 한 후보 지지자들의 심리를 한껏 고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천(陳·45)씨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한 곳마다 성향이 강해 확실한 것이 못 된다"며 "오늘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처럼 선거 결과는 가 봐야 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