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 수동적…獨 외교 마비
트럼프 같은 공격적 리더 원해"

좌파 성향 연정 상대와 삐거덕
獨 경제둔화 '엎친 데 덮친 격'
환경운동가들이 작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당신의 덤핑 가격으로는 우리 기후를 구하지 못한다’고 쓴 팻말을 들고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기후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작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당신의 덤핑 가격으로는 우리 기후를 구하지 못한다’고 쓴 팻말을 들고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기후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위기설이 퍼지고 있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그는 재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종종 위기설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대내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평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정국으로 영국이 겪은 정치·경제 위기가 2020년엔 독일로 옮겨갈 것’(미 CNBC방송)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메르켈 정부의 수동적 대외정책이 첫 번째 문제로 꼽힌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독일이 세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미 독일의 외교는 마비됐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핵협정 파기와 중동 분쟁을 예로 들었다. 슈피겔은 “유럽의 뒷마당에서 핵확산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도 독일 정부는 너무 적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미국 러시아 터키 등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장기 전략이 없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민족주의의 부활, 기후 문제 등 세계가 직면한 이슈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독일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러시아 등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를 유럽의 외교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며 “그나마 가장 관계가 좋았던 중국조차 독일을 협력자에서 경쟁자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도 ‘메르켈의 위기’라는 기사를 통해 “독일은 10년째 이어온 메르켈 정부의 수동적 대처 탓에 지금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스프레스는 “독일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같은 공격적 리더를 원한다”고 일침을 놨다.

독일 내부의 정치 상황은 복잡하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 중심의 대연정이 붕괴할 위기에 놓였다. 대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과 사회민주당 가운데 사민당이 작년 12월 좌파 성향의 새 대표를 뽑은 뒤 균열음이 커지고 있다. 사민당 공동 대표에 오른 노르베르트 발터 보르얀스와 자스키아 에스켄은 “기민당과 연정 합의문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민당은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고 있다.

사민당이 연정에서 탈퇴하면 기민당과 기사당은 과반 의석을 채우지 못해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녹색당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등이 힘을 얻고 있어 ‘정치 9단’인 메르켈 총리도 분열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독일 경제의 둔화도 메르켈 총리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 갈등, 자동차산업 위기 등으로 둔화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지인 독일의 타격이 크다. 독일의 작년 경제성장률은 0.6%로 2018년(1.5%)과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독일의 작년 자동차 생산은 22년 만에 최저를 나타냈다. 블룸버그통신은 “독일은 경제 위기에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며 “베를린의 취약한 리더십이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강국의 최초 여성 총리로서 남성 중심의 독일 정치 문화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총선 당시 2021년 임기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그는 여섯 명의 여성 후계자를 키우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내년 9월 임기까지 무사히 마친다면 그는 독일 최장수 총리라는 명예를 얻는다. 최장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성공한 총리로 역사에 남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summi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