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하는 정책 갈등 속 오성운동 내분 격화하며 의원 연쇄 이탈
극우정당의 '연정 흔들기' 시도 지속…월말 지방선거 결과 주목

이탈리아 연정 위기론 확산…'버틸것이냐, 붕괴할것이냐' 갈림길
작년 9월 출범한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위기론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연정 파트너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 간 정책 갈등이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오성운동의 내분마저 심화하며 연정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6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성운동 소속 하원의원 2명이 3일 탈당 선언과 함께 당적을 버렸다.

두 의원은 조만간 다른 정당에 합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당을 떠나며 '오성운동이 과두정 체제로 변질됐다'고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당원들의 의사가 무시되고 소수의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중순 오성운동의 상원의원 3명이 최대 정적이자 제1야당인 극우 정당 동맹에 입당하며 충격파를 준 지 한 달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그 사이 오성운동 소속 로렌초 피오라몬티 교육장관은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 교육 재정 확대 방안이 배제된 내년도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한 데 항의해 사표를 냈고, 예산법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또 다른 상원의원은 당론 거부에 대한 징계로 오성운동에서 제명됐다.

피오라몬티 전 장관은 오성운동을 떠나 신당을 만든다는 소문이 정계 안팎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피오라몬티 신당'이 설립될 경우 오성운동 소속 상·하원의원들의 연쇄 탈당 사태가 현실화할 개연성도 있다.

이탈리아 연정 위기론 확산…'버틸것이냐, 붕괴할것이냐' 갈림길
여기에 의원들의 추가 이탈을 부를 또 하나의 요인이 존재한다.

이 당은 의원들이 받는 월 6천유로(약 786만원)의 봉급 가운데 일부를 당 운영비 등 명목으로 기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많은 의원이 기부금 납부를 거부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오성운동은 금주 중 회의를 열어 기부금 미납부 의원들의 제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비 납부 거부는 그만큼 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성운동 의원들의 연쇄 이탈은 34세의 젊은 당수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의 리더십을 둘러싼 내분이 격화하는 가운데 터져나온 것이다.

부패·타락한 기성 정치 타파를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2018년 3월 총선에서 33%의 지지율로 최대 정당의 입지를 구축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맹과 연정을 구성해 집권한 이후 기존 정당들과 뚜렷한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주요 이슈에서 동맹에 밀리는 모습마저 보이며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하강 곡선을 그었다.

디 마이오 장관은 작년 8월 동맹과의 연정 붕괴 사태 속에 재신임을 받고 당수 자격을 유지했으나 민주당과의 새 연정 이후에도 지지율 반등의 동력을 찾지 못한 채 민주당과의 정책 갈등마저 심화하며 리더십 위기가 재점화했다.

당내 일각에선 주요 정책 사안에서 민주당에 끌려다니는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디 마이오 장관을 겨냥해 당의 정체성과 진로를 정립할 정치적 비전이 없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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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작년 10월 움브리아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선거 동맹을 맺어 단일 후보를 내세우는 모험을 감행했다가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동맹을 중심으로 한 '우파 연합'에 큰 표 차로 패배하며 당내 입지가 매우 축소된 상태다.

디 마이오 장관을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로는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꽤 힘을 얻는 가운데 '반(反)당수파'와 '친(親)당수파' 간 권력 투쟁 양태마저 엿보인다.

정계 안팎에선 오성운동이 창당 1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문제는 오성운동의 이러한 내분이 연정 붕괴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상원의원 3명의 탈당으로 연정은 321석의 상원에서 5석 차로 간신히 과반을 유지하고 있다.

연정을 지지하는 소수 정당과 소속 정당이 없는 무소속 의원들이 등을 돌리면 곧바로 과반이 붕괴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민주당과의 정책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연정 구성 이후 2020년 예산안, 이민 정책 등을 놓고 끊임 없이 갈등을 겪은 오성운동과 민주당은 올해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사법 개혁안을 놓고 또 한 번 충돌할 태세다.

오성운동은 사법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고 처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급격한 제도 변화가 사법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이미 이념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민주당과의 연정으로 당의 정책이 엇나가고 있다는 내부 비난에 직면한 오성운동 지도부로선 쉽게 양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민주당과 강대강으로 부딪힐 경우 연정 좌초의 빌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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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요인으로는 오성운동이 주도한 의원 정수 감축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 안건이 거론된다.

의회는 연정의 지지 속에 상·하원 의원 정수를 945명에서 600명(상원 630→400명, 하원 315→200명)으로 줄이는 법안을 의결했으나 일부 상원의원들이 이에 반발, 동료 64명의 서명을 받아 작년 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탈리아 정치 체제의 근간을 바꾸는 이번 사안에 대한 의회의 자의적인 입법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자는 취지다.

헌법재판소에선 절차상의 큰 하자가 없다면 헌법소원을 반려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르면 올해 중 국민투표가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31% 안팎으로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동맹이 줄기차게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의회 시스템으로 조기 총선을 실시해 의석을 지키려는 다수의 의원이 동맹에 힘을 실어줄 경우 연정 해체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달 26일 예정된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 지방선거 결과도 연정의 향배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인구 기준으로 이탈리아 20개주 가운데 네 번째로 큰 에밀리아-로마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줄곧 진보 세력이 우위를 점해 '좌파의 성지'로 불리는 지역이다.

민주당으로선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곳이지만, 동맹 후보로 단일화한 '우파 연합'의 추격이 거세 판세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어느 쪽의 확실한 우위로 보기 어려운 박빙 승부로 나타났다.

움브리아주 지방선거 패배의 후유증으로 연정이 분열하며 민주당과 오성운동이 각각 후보를 낸 가운데 만에 하나 우파연합에 패배할 경우 책임 논란과 함께 그나마 남아있는 양당의 연정 지지 기반이 급속히 약화하며 결국 붕괴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탈리아 연정 위기론 확산…'버틸것이냐, 붕괴할것이냐' 갈림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