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 호황을 이어가는 미국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구조적 저성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경기침체가 닥쳤을 때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도 컸다.
3~5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맨 왼쪽)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토론석 왼쪽부터 도미닉 살바토르 포드햄대 교수, 제니스 에벌리 노스웨스턴대 교수, 발레리 래미 UC샌디에이고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샌디에이고=김현석  특파원
3~5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맨 왼쪽)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토론석 왼쪽부터 도미닉 살바토르 포드햄대 교수, 제니스 에벌리 노스웨스턴대 교수, 발레리 래미 UC샌디에이고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샌디에이고=김현석 특파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경제학회(AEA) 첫날인 지난 3일 ‘미국 경제: 성장, 스태그네이션 또는 새로운 경제위기’ 세션에서 “미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최저인데 무슨 장기침체냐’는 반론엔 “반세기 만의 실업률에도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연 2%의 물가 상승을 목표로 잡았지만 실제 물가 상승률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서머스 교수는 특히 “다음 위기가 어디에서 발생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에게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것은 안다”며 위기 대응력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했지만 이제는 (저금리로 인해) 더 인하할 여지가 없다”며 “재정 지출도 이미 엄청나게 확대한 상태”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서 “제로 수준이나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통해 성공적인 경제를 운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더 많은 공공투자’를 대안으로 강조했다.

서머스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올해 전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엔 “더욱 도전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향후 수년간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유입이 (이전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세계화가 미국에 어떤 의미를 갖든 신흥시장에는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상당수 신흥시장 국가가 세계화를 통해 성장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서머스 교수는 신흥시장국이 취할 수 있는 해법으로 “내수를 키우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위기를 부를 잠재적 뇌관으로 부채를 지목했다. 그는 미국의 부채에 대해 “세입 구조가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션 사회를 맡은 국제경제학자인 도미닉 살바토르 포드햄대 교수는 “경제 성장의 두 가지 동력은 노동력과 생산성”이라며 “1999년 이후 가파른 기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국의 노동력과 생산성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성장 추세가 2%를 넘지 못하는 수준으로 둔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경제 호황’에 대해 “연평균 성장률은 역대 확장기보다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최장기간 성장이자 가장 느린 경기 확장”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2000~2019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0%지만 1인당 소득 증가율은 그보다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가 좋다’고 줄기차게 언급하면서 미국인들의 경제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경제에서 내러티브(스토리)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뉴욕타임스조차 ‘트럼프 호황’이란 말을 쓴다”고 했다. 미국 경제의 현실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이지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장밋빛 스토리’가 단기적으로 경제심리를 호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러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조언해달라’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엔 “중요한 건 스토리”라며 “중국은 ‘중국의 세기가 오고 있다’는 스토리를 통해 자국민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성공 스토리는 강력하고 세계 모든 사람이 삼성을 안다”며 “한국은 국민들로 하여금 성공을 열망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삼성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샌디에이고=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