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녹색금융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하겠다는 라가르드 총재의 계획에 ECB 최대 주주인 독일이 반기를 든 것이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경제학자 출신인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는 독일 뵈르젠 자이퉁과의 인터뷰에서 “ECB가 양적완화 프로그램이나 은행 감독 측면에 있어 소위 녹색자산을 선호해선 안 된다”며 “이런 조치는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 경제학자 출신인 슈나벨 이사는 이달 1일 ECB 이사회의 독일측 집행이사로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기후변화 대응을 ECB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ECB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ECB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녹색 양적완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에는 각종 대출 규제를 완화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는 줄이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슈나벨 이사는 “ECB가 녹색자산에 대한 위험 가중치나 담보 설정시 특혜를 주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위험한 녹색자산까지 특혜를 주는 건 금융시스템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 슈나벨 이사의 지적이다.

앞서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분데스방크) 총재도 지난달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을 변경하려는 ECB의 어떤 시도도 아주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최우선 과제는 건전성 확보이지 기후변화 대응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유럽연합(EU)은 당초 지난달 초 녹색금융 상품 및 투자에 대한 초안에 합의할 예정이었다. ECB와 함께 유럽을 이끄는 두 축인 EU 집행위원회는 녹색금융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EU가 녹색금융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ECB의 녹색 양적완화 등에 대한 추진 근거도 마련될 수 있다.

하지만 녹색금융 상품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 회원국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U는 협의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 녹색금융 분류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유럽 최대 경제대국이자 ECB 최대 주주인 독일이 녹색 양적완화 등 녹색금융에 제동을 걸면서 라가르드 총재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