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했던 스웨덴 중앙은행이 4년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제로(0)로 다시 올렸다. 마이너스 기준금리에도 경기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부동산 시장 과열로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등 부작용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주요 국가에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포기한 건 스웨덴 중앙은행이 처음이다.
5년 마이너스 금리 실험 ‘끝’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19일(현지시간) 정책금리인 레포(Repo)금리를 연 -0.25%에서 연 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레포금리는 시중은행과의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때 적용되는 기준금리다. 스테판 잉베스 릭스방크 총재는 “과열된 주택시장이 경제에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며 “금리 인상을 통해 정상적인 경제 상황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릭스방크는 2015년 2월 기준금리를 전 세계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연 -0.1%까지 내린 뒤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해 왔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중앙은행은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일본, 스위스, 덴마크 등이다. 하지만 기준금리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중앙은행은 스웨덴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단기자금(일일 기준)을 맡기고 받는 정책금리 중 하나인 예금(예치)금리에 마이너스를 적용했다.
릭스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침체에 빠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낮췄다.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해 온 또 다른 이유는 자국 화폐인 크로나 가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스웨덴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엔 가입하지 않았다. 수출 비중이 높은 소규모 개방국가의 특성상 통화가치 약세를 용인해 왔다.
주택시장 과열에 가계부채 폭증
시장은 릭스방크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스웨덴 성장률이 전년(2.4%)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1%로 예상되는 등 경기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스웨덴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EU의 경기 둔화 여파 때문이다. 스웨덴의 물가 상승률도 1.7%로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다.
그럼에도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포기한 것은 부동산 시장 과열 등 부작용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가계부채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마이너스 기준금리가 도입된 2015년 이후 주택가격은 매년 10% 안팎까지 올랐다. 지난해 중반 일시적으로 상승률이 낮아졌지만 올 2분기부터 다시 오르는 추세다. 주택시장이 과열되면서 가계부채도 치솟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스웨덴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89%에 이른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덴마크, 스위스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가계부채가 결합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연상케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스웨덴의 마이너스 금리정책 포기에 따라 ECB와 일본, 덴마크, 스위스 등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 중인 다른 중앙은행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다만 경기 회복 징후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금리를 동결한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금리 인하 압박에도 미 중앙은행(Fed)은 내년에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대기업의 몫을 빼앗아 나눠주자’는 식으로 정책을 펼친다면 그 나라는 침몰할 수 있습니다.”스웨덴 최대 투자사인 EQT파트너스의 토마스 반 코치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사진)의 조언이다. 코치 회장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던 스웨덴에서도 (지금은) 성장과 번영을 먼저 생각한 뒤 분배를 논의해야 한다는 데 기업과 정부가 의견을 같이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고 성장이 멈춘다면 분배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정부는 전날 내놓은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 조성 가속화’를 중점 과제로 내세웠다. 스웨덴은 사회적 경제의 모델 국가로 꼽힌다.코치 회장은 “스웨덴도 한국과 비슷하게 산업 관련 규제가 엄격하고 보수적이지만 정부와 기업이 끊임없이 대화하며 문제점을 풀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업이 가깝다는 건 서로 존중하며 소통한다는 뜻”이라며 “정부는 기업 경영에 절대 간섭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그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이끄는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마르쿠스 발렌베리 발렌베리그룹 회장 등과 함께 방한했다. EQT파트너스는 발렌베리그룹 산하 투자사다. 코치 회장은 이 회사 창립멤버로 총괄회장까지 지낸 뒤 아·태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기업에 '징벌적 과세' 했다가 경제위기 맞아"토마스 반 코치 EQT파트너스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사진)은 “스웨덴이 지금처럼 경제 성장에 무게를 두는 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스웨덴은 1990년대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조세·노동·규제 분야의 전방위 개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은 1980년대 50%에 달했던 법인세율을 점진적으로 인하했다. 현 법인세율은 한국보다 낮은 21.4%다.코치 회장은 “스웨덴에선 한때 정치인들이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비난하며 (일부 법인 관련 항목) 세율을 최고 100%까지 올렸고 이후 경제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이런 정책을 시행한 뒤 깨달은 건 기업 세율을 올려 경제가 침체하면 정부 세수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법인세를 높이고 기업의 활력을 누르면 국경을 넘어 경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겁니다.”스웨덴의 정치권과 기업이 ‘정경유착’ 논란 없이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투명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코치 회장은 “스웨덴은 사회가 투명해 정치인은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며 “기업인과 정치인이 거리낌 없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복지의 모델 국가로 통한다. 코치 회장은 “사회 복지 가운데서도 교육과 기회 균등이 중요하다”고 했다.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법치주의 확립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에 투자하고 보니 중국은 권력에 의해 법 집행이 좌지우지되는 탓에 아무리 강력한 법률을 만들어도 지키는 사람이 적다”며 “반면 스웨덴에선 법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고 여겨 처벌이 약하고 감옥 생활이 편한데도 법을 어기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그는 자본이 수익과 효율성에만 가치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밝혔다. 코치 회장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업가 정신과 경쟁의 자유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가 강조한 사회적 가치는 ‘기업이 성장하면서 늘어나는 일자리’다. 코치 회장은 “EQT파트너스가 과거 인수한 기업들은 고용을 매년 10%씩 늘렸다”며 “미국 사모펀드(PEF)와 달리 자본 재조달이나 배당 등으로 인수 기업에서 돈을 빼내지 않고 재투자한 결과”라고 했다.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공식 방문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만나 “북·미 대화에서 반드시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스톡홀름에서 북·미 대화를 주선해준 것에 대해 각별히 감사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진 만찬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만들어온 스웨덴의 지혜가 함께한다면 한반도는 어려운 고비를 넘어 끝내 항구적 평화에 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스웨덴은 올해 1월 남·북·미 협상대표 회의 및 10월 북·미 실무협상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는 등 남북 관계와 의미가 깊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6월 스웨덴 국빈방문 당시 의회 연설에서 “평화는 핵이 아닌 대화로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의 ‘스톡홀름 제안’을 밝힌 바 있다.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62개 기업, 80여 명)과 한국을 찾은 뢰벤 총리에게 ‘평화가 경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서울 롯데 시그니엘호텔에서 열린 한·스웨덴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새로운 도전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어 “평화가 경제이고, 경제가 곧 평화라는 것을 스웨덴이 증명했다”며 “한반도 평화는 양국 기업에 많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남북, 미·북 관계가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 경제론’을 다시 언급하며 북한의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뢰벤 총리는 “한국의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양국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스웨덴 총리 초청 공식만찬…"스웨덴의 지혜, 세계 곳곳서 평화 만들어""스웨덴 의료지원단 한국전쟁서 헌신…후손들에 소중히 전해질 것"뢰벤 총리 "한-스웨덴 관계 60년…환갑은 중요한 의미" 윤선도 시조도 거론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를 향해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만들어 온 스웨덴의 지혜가 함께 한다면, 한반도는 어려운 고비를 넘어 끝내 항구적 평화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뢰벤 총리 초청 공식만찬을 하며 인사말에서 "스웨덴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것에 특별히 감사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최근 북한이 제시한 '연말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교착상태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도발 우려까지 번지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이 '어려운 고비'라고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아울러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지지 속에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도 엿보인다.문 대통령은 또 스웨덴을 '든든한 동반자'로 표현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지를 당부했다.스웨덴 정부가 외교부 내 한반도 담당 특사를 임명하고, 지난 1월에는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북미 북핵 협상 수석대표가 참여하는 회의를 개최하는 등 평화 프로세스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문 대통령은 또 인사말에서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며 "그중에서도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모임 '한서협회'를 중심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속 스웨덴인'의 상영을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내년은 스웨덴이 한국전쟁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지 70년이 되는 해"라며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감동적 사연을 담은 이 영화는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겨 줬고 인도주의 정신의 위대한 이야기로 양국의 후손들에게 소중하게 전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당시 치료받은 한국인들은 고령이 됐지만 여전히 스웨덴과 한국의 깊은 인연을 증명하고 있다"며 "전쟁 후 한국의 국립의료원 설립에도 많은 도움을 준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숭고한 헌신에 다시 한번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어 "'모두가 평등하며 행복한 국가'로 가는 스웨덴은 같은 목표를 가진 우리에게 많은 모범과 영감을 주고 있다.사회적 대타협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며 포용이 혁신으로 가는 기반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했고, 성숙한 성 평등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그러면서 "오늘 총리님과 나는 공정과 자유, 평등을 바탕으로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해 더욱 폭넓게 협력하기로 했다"며 "ICT, 스타트업, 과학기술 협력은 혁신성장을 촉진하고 성평등, 복지 협력은 포용성장을 뒷받침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총리님의 방한이 우리에게 '율톰텐(스웨덴에서 산타클로스를 지칭하는 말)'의 성탄선물이 됐다"며 스웨덴어로 "스콜"이라고 외치며 건배를 제의했다.뢰벤 총리는 답사에서 "한-스웨덴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 '환갑'은 대단히 중요한 시간을 의미한다고 배웠다"며 "저도 환갑을 넘어 잘 알 수밖에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뢰벤 총리는 "만찬에 함께한 사상 최대의 경제사절단만 봐도 양국의 협력 잠재력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스웨덴은 부산에 의료지원단 봉사를 했다. 그 때 스웨덴 적십자 병원이 오늘날까지 양국 관계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떠올렸다.뢰벤 총리는 윤선도 시인의 시조를 거론하며 "좋은 술은 어떻게 만드는가, 재치가 합쳐져서 빚어진다. 좋은 국물은 어떻게 만드는가, 조미료가 합쳐져서 만든다"면서 양국의 우호관계를 강조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