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일관되게 '브렉시트 완수' 강조…메시지 단순화
노동당, 브렉시트 입장 불명확…너무 많은 공약에 효과적 전달 실패
'브렉시트 집중' vs '백화점식 공약'…英 총선 희비 엇갈린 요인
2년여만에 다시 실시된 영국 총선이 보수당의 압승, 노동당의 기록적 패배로 마무리됐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진두지휘한 보수당은 2017년 총선 대비 47석이 늘어난 364석을 확보하면서 1987년(376석) 이후 최대 승리를 기록했다.

반면 노동당은 직전 총선 대비 무려 59석이 줄어든 20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당초 선거 캠페인 기간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보다 줄곧 10%포인트(p)가량 높았지만, 이같은 압도적 승리는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수당이 주요 경합지역은 물론 '붉은 벽'(red wall)으로 불리면서 전통적인 노동당의 강세 지역이었던 잉글랜드 북부와 미들랜즈, 웨일스 북부 지역 여러 곳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라는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내세운 보수당과 달리 유권자들은 노동당의 백화점식, 급진적 공약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야당 간의 공조 미흡 역시 보수당의 재집권을 막지 못한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간 가디언은 13일(현지시간) 보수당의 승리와 노동당의 패배 요인을 각각 5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 보수당 승리 요인
▲ 브렉시트 = 존슨 총리는 이번 총선 캠페인 기간 보수당이 승리하면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는 메시지를 거듭 반복했다.

이같은 일관된 메시지가 2016년 6월 국민투표 이후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브렉시트 혼란이 지속하는데 지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존슨 총리는 이미 자신이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에 도달한 만큼 총선에서 승리하면 신속하게 브렉시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또 다른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유권자들 마음속에 심는 데 성공했다.

▲ 메시지 단순화 = 보수당은 브렉시트 완수와 함께 경찰관 및 간호사 증원 등 유권자들에게 쉽고 단순하게 전달될 수 있는 공약에 집중했다.

반면 노동당은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부터 광대역망 인터넷 무료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공약'을 내놔 대비를 이뤘다.

▲ 안정 우선 전략 = 보수당의 총선 공약은 노동당과 비교하면 크게 눈에 띌만한 내용은 없다는 평이 많았다.

감세 규모는 크지 않았고, 공공지출 확대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2017년 조기 총선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사회보장 서비스 등과 관련해 인기 없는 정책을 내놨다가 과반에 실패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보수당은 특히 여우 사냥 허용 여부 등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될만한 이슈와 관련해서는 아예 변화를 가하는 것 자체를 피하는 데 주력했다.

▲ 노동당의 인기 하락 =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은 여러 지역에서 득표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보수당 후보의 득표수가 늘어 당선되기보다는 노동당 후보 득표가 부진하면서 승리를 거둔 경우도 많았다.

노동당의 브렉시트 정책에 불만을 품은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EU 탈퇴를 내건 브렉시트당에 투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보리스 존슨 =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일부 극렬 지지자 외에 일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보수당을 이끈 존슨 총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2017년 총선 당시의 테리사 메이 총리보다는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TV 토론을 피했던 메이 총리에 비해 존슨 총리는 코빈 대표와 두 차례 TV 양자토론에 응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말실수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존슨 총리는 이번 캠페인 기간에는 최대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존슨은 이달 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런던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함께 있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영국 내에서 인기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모습을 보일 경우 총선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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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패배요인
▲ 제러미 코빈 = 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인물은 단연코 코빈 대표다.

코빈 대표는 1970년대 말 이후 야당 대표 중에서는 가장 낮은 순 지지율을 가진 상황에서 총선 캠페인에 돌입했다.

이전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지지 발언을 한 코빈 대표는 노년층 유권자로부터 인기가 없었다.

수도 런던에서는 반(反) 유대주의 논란과 이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코빈 대표를 곱게 보지 않는 시각이 많았다.

▲ 매니페스토(선거 정책공약) = 노동당의 올해 총선 공약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억하기 힘들 만큼 많은 내용을 담았다.

노년층 돌봄서비스 무료, 대학교 수업료 무료, 선거 투표 연령 16세로 하향 조정 등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공약을 내놨다.

문제는 철도 요금 인하 등 노동당이 내놨던 공약 중 중간에 철회된 것도 많다는 점이다.

노동당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만났을 때 이같은 공약 철회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한 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너무 많은 공약을 내놓으면서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이 중에는 유권자들로부터 인기 없는 정책도 많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무료와 같은 정책은 유권자들로부터 "굳이 왜"라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고 노동당 관계자들은 밝혔다.

▲ 브렉시트 전략 = 이번 총선 결과가 전해진 뒤 코빈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브렉시트 피로감'을 패배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브렉시트가 선거 전반의 이슈가 되면서 노동당의 개혁적인 국내 어젠다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노동당의 불분명한 브렉시트 입장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코빈 대표는 노동당이 승리하면 3개월 이내에 EU와 새 브렉시트 합의를 추진한 뒤 6개월 이내 이를 제2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총리로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키어 스타머 노동당 예비내각 브렉시트부 장관 등은 노동당이 국민투표에서 EU 잔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브렉시트 입장을 하나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영국은 2016년 6월 실시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전체의 52%인 1천740만명이 EU 탈퇴에, 48%인 1천610만명은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

EU 탈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노동당이 1천740만명에 달하는 국민의 뜻과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있다고 여겼다.

노동당 내부에서도 브렉시트와 관련한 잘못된 접근법이 이번 선거 실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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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벽'의 붕괴 = 보수당은 전통적인 노동당의 강세 지역이었던 '붉은 벽' 공략에 공을 들였다.

보수당은 노동당이 이들 지역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너무 당연시하고 있다며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노동당은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석탄과 철광, 제조업 중심의 '붉은 벽' 지역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부족했다.

노동당이 100년 넘게 유지해 온 지역구가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으로 넘어간 곳도 나왔다.

여러 급진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런던 중산층 출신의 코빈 대표 등 노동당 지도부가 노동자 계층과 괴리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선거전략의 실패 = 잘못된 '선택과 집중' 선거전략도 실패로 이어졌다.

코빈 노동당 대표를 지지하는 평당원 그룹인 '모멘텀'(Momentum)은 2017년 총선에서 적극적인 캠페인에 나서 노동당이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모멘텀'은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존슨 총리 지역구, 보수당 전 대표를 지낸 이언 덩컨 스미스 의원의 지역구 확보에 공을 들였다.

이들 지역에서 승리하면 보수당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이들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접전 지역의 노동당 후보는 당의 부족한 지원으로 인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