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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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녹색정책’이 EU 안팎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동유럽 및 아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EU의 녹색정책에 대해 시장 접근 및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신(新)보호 무역주의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12~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후변화 대응 관련 대책 회의를 열 계획이다. 회원국들은 이 회의에서 2050년까지 ‘탄소 제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대책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유럽을 이끄는 두 축인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1일 공식 취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30년까지의 EU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에서 55%까지 높이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까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파격적인 대책을 내놨다.

EU 집행위원회와 ECB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유럽 그린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의 EU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당초 40%에서 55%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EU의 이 같은 계획은 EU 안팎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EU의 녹색정책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이들은 EU가 추진하는 녹색정책이 개발도상국들의 EU 시장 접근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겉으로는 기후변화라는 도덕적 의무를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시장 접근을 차단하려는 이른바 ‘신보호주의’라는 것이 개발도상국들의 주장이다.

EU의 녹색정책은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석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회원국들이 EU의 그린딜 정책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와 ECB가 공동 추진하는 ‘녹색 금융상품’에 대한 분류 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와 ECB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등엔 대출규제를 완화해주고, 화석연료 사업 투자는 줄이는 녹색금융 정책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EU와 ECB는 이를 위해 녹색 금융상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투자가 해당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기준 마련의 핵심 관건은 원자력발전 등 저탄소 활동에 대한 투자가 녹색 금융상품에 포함될 지 여부다.

당초 EU 집행위는 이달 초 실무 협의를 거쳐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금융상품에서 제외하겠다는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들은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동유럽에선 지금도 냉전 시절 옛소련이 건설한 원전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국가가 적지 않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원전 강국이다.

EU 집행위는 유럽의회 및 각 회워국들간의 협의를 거쳐 그린딜 정책의 세부 내용을 내년 말까지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