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기업가치는 1조7000억달러(약 2025조1000억원)에 이른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1조179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국내 코스피 시가총액(6일 종가 기준 1398조7700억원)과 코스닥 시가총액(225조2000억원)을 합친 것보다도 크다.
11일 상장 아람코, 시총 2025조원…'코스피+코스닥'보다 크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람코는 이날 주당 공모가를 32리얄(약 1만473원)로 결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아람코는 오는 11일 사우디 증시(타다울)에 상장할 예정이다.

IPO로 아람코 전체 주식의 1.5%인 30억 주를 매각해 256억달러를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중국 알리바바가 2014년 미국 뉴욕증시 IPO 때 기록한 250억달러보다 많은 사상 최고액이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계산한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1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아람코는 최근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에게 각각 지분 1.0%와 0.5%를 할당한 공모에서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기관투자가 대상 공모에서는 매각 예정 주식(20억 주)의 세 배에 가까운 59억 주의 청약이 몰렸다. 지난달 28일까지 접수한 개인투자자 공모에선 사우디 국민 3400만여 명 가운데 490만여 명이 참여했다.

이 같은 흥행에도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당초 사우디 왕실의 기대치 2조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IPO를 추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기대했던 ‘블록버스터급’ 데뷔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 5%를 국내외 증시에 상장해 100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려 했으나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에 정체되고 석유 시설 피습 등 지정학적 불안정이 커져 IPO를 일단 국내로 한정했다. 아람코는 앞으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가운데 한 곳을 택해 2차 상장에 나설 계획이다.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서는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과대 평가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리서치는 최근 투자자 설문을 통해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1조2600억달러로 제시하기도 했다. 번스타인리서치는 “아람코는 재무 상황이 좋은 편이지만 기업 지배구조와 제한된 수익 증가 등이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우디는 상장 이후 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원유 감산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브라질, 노르웨이 등 비OPEC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가 예고돼 있어 국제 유가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아람코가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최소 배럴당 60달러 수준이 유지돼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를 포함한 OPEC과 러시아가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회의를 열고 내년 3월까지 감산 규모를 기존 하루평균 120만 배럴에서 170만 배럴로 확대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OPEC 회원국들이 감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원유 생산을 늘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번 합의가 지켜질지는 불확실하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