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연내 1단계 무역협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시장 개방 확대 및 구조 개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이 기존 관세를 먼저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홍콩 문제까지 겹치며 두 나라가 막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합의를 내년 대선 이후로 미룰 수 있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월가에선 이럴 경우 글로벌 증시가 단기간 5~10%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미·중 무역협상 합의에) 데드라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과의 합의를 (미국) 대선 이후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선은 내년 11월 치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중국이 지금 합의하고 싶어 하지만 합의는 옳은 것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美·中 1단계 무역합의 물건너 가나…트럼프 "내년 대선 뒤로 미룰 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에 강력한 압박 메시지를 다시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0월 ‘미니딜’ 이후 중국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니딜은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수입하고 미국은 추가 관세를 미루는 내용이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당초 지난달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세부 협상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두 정상 간 만남도 불투명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 직전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오는 15일까지 협상이 합의되지 않으면 156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대한 15% 관세 부과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12월 15일 관세 부과가 유예될 것이란 그동안의 시장 기대와는 어긋나는 발언이다.

미국은 중국의 대표적 기술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견제도 이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유럽이 5세대(5G) 이동통신망 등 중요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화웨이나 ZTE 같은 중국의 ‘기술거인’들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삼성과 스웨덴 에릭슨, 핀란드 노키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밀월을 과시하며 미국의 압박에 맞서고 있다. 시 주석은 전날 베이징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중·러 천연가스관 개통을 축하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러시아안보회의 서기를 접견한 자리에선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중국과 러시아 내정 간섭을 하고 주권과 안전에 대해 위협을 하며 경제와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은 중국에서 남미와 유럽으로 확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트위터를 통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자국 통화를 엄청나게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이들 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당장 복원한다”고 썼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미국에 수출할 때 철강 25%, 알루미늄 10%의 관세를 내야 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디지털세 도입을 준비 중인 프랑스에 보복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USTR은 이날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프랑스의 디지털세를 조사한 결과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프랑스산 와인 등 63개 품목, 24억달러어치에 최대 100% 관세를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주용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