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혁신성장 속도내는 러시아

자원의존형 경제 탈피 나섰다
외국기업 투자 확대는 미지수
러시아 정부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혁신성장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저유가 기조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서방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에너지 자원 수출을 대신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게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초 연두교서에서 “사업환경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고 혁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덕분에 러시아의 기업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일부 혁신기업의 실적 향상을 기반으로 주식시장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해외 투자 유치가 줄어든 점은 개선해야 할 요인으로 꼽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9월 모스크바에 있는 얀덱스 본사를 방문해 얀덱스가 개발한 자율주행차를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9월 모스크바에 있는 얀덱스 본사를 방문해 얀덱스가 개발한 자율주행차를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투자환경 개선 노력

러시아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지금과 같은 자원의존형 경제구조에선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세계은행(WB)은 2019~2020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러시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량 증대, 대체에너지 개발 등으로 에너지 공급은 늘어나는 반면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소비는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를 집중 유치해 기술 이전과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혁신성장 정책을 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3기(2012~2018년)부터 러시아의 투자환경 개선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늘리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 평가인 ‘두잉비즈니스(Doing Business)’ 지수에 따르면 러시아의 순위는 2010년 124위에서 2020년 28위로 뛰어올랐다.

기업 현장에서도 이 같은 사업환경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알렉세이 라흐마노프 러시아 통합조선공사(USC) 사장은 지난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절차가 간소해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IT·헬스케어에 투자 집중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재원도 투입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첨단기술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국영기관 러시아벤처컴퍼니(RVC)를 2006년 설립해 약 512억루블(약 9415억원)의 자금을 운영하고 있다. RVC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189개 기업에 175억루블을 투자했다. 이 중 28.59%가 정보기술(IT) 및 인터넷 기술·서비스 분야에 집중됐다. 의약·헬스케어 분야 투자가 25.68%로 그 뒤를 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IT 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을 유지했다. 러시아, 벨라루스 등의 164개 IT 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러스소프트(Russoft)의 발렌틴 마카로프 회장은 “푸틴 정부는 IT산업 육성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2008년 경제위기 때도 IT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IT 제품 생산을 위한 경제특구 지정 등 지원 정책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을 ‘국가기술 이니셔티브(NTI) 2035’의 10대 핵심 기술로 정하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17년부터 내년까지 10대 기술 육성을 위해 78억루블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 집권 4기 이후 이 같은 정책적 노력이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 9대 국정과제 중 3개가 경제 혁신 관련으로 △기술발전 가속화와 기술혁신 기업 50% 증가 △사회·경제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 도입의 가속화 △제조업, 농공단지 등 기초 경제 분야에서 첨단 기술과 고급 인력에 기반한 고생산성 수출 부문 육성 등이 목표다.

혁신기업 중심 ICT 생태계 형성

혁신기업들도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구글’이라고 불리는 얀덱스는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택시, 배달 등 모바일 서비스를 확대하고 최근엔 현대모비스와 완전자율주행 플랫폼을 공개했다. 얀덱스는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얀덱스, Mail.Ru 등 러시아 인터넷기업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서 러시아 주식시장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증시의 RTS지수(11월 29일 기준)는 작년 대비 26.04%, MICEX지수는 22.38% 올랐다.

하지만 기업 환경 개선이 러시아에 대한 투자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러시아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순유입액은 87억달러에 그쳤다. 고점을 기록한 2008년(747억달러)에 비하면 9분의 1 수준이다.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 투자가 감소하면서 혁신 성장과 첨단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원 KOTRA 전문위원은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기 위해서 러시아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경기 부진으로 인해 투자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모스크바=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러, 저유가·서방제재 돌파구 찾기 부심…IT·의약 '통 큰 투자'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KPF 디플로마 ‘러시아전문가’ 과정 참여 후 작성되었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