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범(汎)민주 진영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구의원 선거에서 얻은 동력을 바탕으로 행정장관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서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은 다음달 8일 도심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콩 시민들은 이 집회에서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 민주화 조치를 요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범민주 진영이 이번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했지만 홍콩의 정치 체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을 시민이 직접 뽑지 못하면 홍콩의 자치와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홍콩 시민들은 현행 선거제에선 사실상 중국 정부가 행정장관을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5년 임기인 홍콩의 행정장관은 선거인단이 선출하고 중국 총리가 형식적으로 임명한다. 선거인단은 행정장관 임기와 동일하게 5년마다 교체된다. 초대 선거 때는 400명으로 시작해 1998년 800명으로 늘었고 2012년엔 1200명으로 증가했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사진)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구성하는 선거인단도 지금처럼 1200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인단은 행정장관 선거 1년 전인 2021년 선출된다.

압승한 홍콩 민주파…"다음달 행정장관 직선제 쟁취 최대 집회"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은 산업·금융계와 회계·법률·교육·의료·정보기술(IT) 등 전문직군, 농어업·노동·사회복지·스포츠·종교계, 그리고 정치권에 300명씩 배정돼 있다. 이 중 정치권을 제외한 세 개 분야 선거인단은 친중(親中) 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권 선거인단은 구의원 117명과 입법회 의원 70명,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 60명,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표 35명 등으로 할당돼 있는데 전인대 대표와 정협 대표는 대부분 중국 정부가 임명한다. 구의원 선거에서 이긴 범민주 진영이 117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게 됐지만 전체 선거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년 9월 예정된 입법회 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승리한다고 해도 행정장관 선거인단 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입법회 정원 70명 가운데 절반인 35명만 시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나머지 35명 중 30명은 직능조합에서 대표를 뽑아 입법회 의원으로 보내고 5명은 구의원들이 선출한다. 현재 직능대표 30석 중 22석을 친중계가 차지하고 있다. 내년 입법회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더라도 확보할 수 있는 선거인단 수는 40명 안팎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복잡한 선거인단 선출 방식 때문에 홍콩에선 선거를 통해 정치 체제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행정장관 선거 규칙은 중국 전인대가 정한다. 중국 정부의 의중에 따라 얼마든지 선거인단 수와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중국에 비판적인 후보의 출마를 아예 막을 수도 있다.

미국 CNBC방송은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에 홍콩 시민의 반중(反中)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정치적 의미 외에 실질적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리 람 행정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위대의 다섯 가지 요구 중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다른 요구사항은 수용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 등 홍콩 시민과 홍콩 경찰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정부는 전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선거 패배의 책임을 미국에 둘렸다. 정쩌광 외교부 차관은 브랜스태드 대사에게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이 통과된 것을 강력히 항의했다. 그는 “미 의회의 홍콩 관련 법안은 중국 내정을 간섭하는 것”이라며 “반중 홍콩 혼란 세력의 폭력과 범죄 행위를 지지해 국제 관계 기본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