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협상 타결이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협상 서명을 앞두고 양국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이행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당초 이달 중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미국 측 협상단에 중국 베이징에서 고위급 대면 협상을 하자고 지난주 제안했으나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측은 대면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으나 중국이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강제 기술 이전 방지, 농산물 수입 확대 등 주요 사안에 대해 확실한 약속을 내놓지 않는 한 베이징까지 가긴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중국이 올해 안으로 무역합의에 다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구매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미국 주장과 미국의 추가 관세 철회를 요구하는 중국 측 방침이 충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고위급 협상단은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협상에서 1단계 무역합의, 이른바 ‘스몰딜’에 합의한 사실을 밝혔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16~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만나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할 계획이었으나 칠레가 APEC 개최를 포기하면서 서명 일정이 연기됐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 문제도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날 미국 하원은 전날 상원에서 통과시킨 ‘홍콩인권법’을 가결했다. 법안이 양원을 통과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수용 또는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현 상황을 놓고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류허 중국 부총리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블룸버그미디어그룹의 뉴이코노미포럼에서 “1단계 무역 합의가 조만간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계의 거두로 미·중 관계 정상화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은 같은 행사에서 “미국과 중국은 냉전 초입에 들어선 모양새”라며 “서로 갈등을 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에서 생산된 애플 제품에 관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애플의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베트남과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 삼성전자 제품은 무관세로 수입되는데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협상이 불발되면 12월 15일부터 스마트폰 등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5% 추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