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가 내달 12일 열리는 조기총선을 앞두고 법인세 인하 방침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19%인 법인세율을 내년 4월까지 17%로 낮추기로 한 당초 계획을 보류하겠다는 것이다.

존슨 총리는 18일(현지시간) 영국 최대 기업로비 단체인 영국산업연맹(CBI) 주관으로 열린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집권여당인 보수당은 재정에 있어 신중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영국은 다른 주요 국가와 비교해 가장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 4월 예정된 법인세 인하방침은 보류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남는 60억파운드(약 9조원)를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재원 확충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법인세율을 28%에서 단계적으로 19%까지 낮췄다. 당초 정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까지 법인세율을 17%로 추가 인하할 예정이었다. 존슨 총리도 지난 7월 취임 직후 “기업인들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겠다”며 “브렉시트 이후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을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BBC는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과 제1 야당인 노동당이 경쟁적으로 투자공약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존슨 총리가 법인세 인하 방침을 철회했다고 분석했다. BBC는 이날 논평을 통해 “존슨 총리와 보수당은 지금까지 법인세를 인하하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 세수가 늘어난다고 주장해 왔다”며 “지금은 감세 철회가 세수를 늘린다고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꼬집었다.

영국 재계는 정부의 법인세 인하 철회 방침에 강력 반발했다. CBI는 이날 공식 성명에서 “복지 등 공공서비스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선 법인세를 더 내려야 한다”며 “법인세 인하를 통해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이날 CBI 주관으로 열린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그는 자신이 ‘반(反)기업 성향’이라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노동당은 내달 총선을 앞두고 법인세율을 26% 수준까지 올리고, 철도, 우편, 수도, 통신 등을 국유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코빈 대표는 “대기업이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며 “국가가 번영하기를 원하는 것은 반기업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유화 공약에 대해서도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영국을 유럽 대륙과 비슷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코빈 대표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초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릴 것”이라면서도 “기업들이 생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