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이라크·레바논 민중 분노 중심은 反이란 정서"
이란 "美, 시위 공작"…"특정 세력보다는 지배계층 향한 분노" 시각도
"중동서 패권 키운 이란, 곳곳서 반대 시위 '부메랑'"
이라크·레바논을 뒤덮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 반(反)이란 정서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으며, 이는 그간 역내 패권을 추구한 이란이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달 1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이라크에서는 4일(바그다드 현지시간)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이 재개되며 시위대 5명과 경찰 1명 등 최수 6명이 숨졌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밤 바그다드 남부 카르발라에선 이란 총영사관이 시위대로부터 습격을 받았으며 경찰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3명이 숨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라크 시위는 수도 바그다드와 함께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 등 이란의 영향력이 강한 남부에서 특히 격렬하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도 "이란 축출" 구호를 외치고 이란 지도자들의 모습이 들어간 광고판을 부쉈다고 소개했다.

"중동서 패권 키운 이란, 곳곳서 반대 시위 '부메랑'"
최근 약 10년간 이란은 중동 각국의 정치적 불안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란은 민병대를 보내 시아파 세력의 권력 장악을 돕는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그 결과 중동에서 이란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실정(失政)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정부뿐만 아니라 그 후원 세력인 이란을 향하는 모양새라고 WSJ은 분석했다.

레바논 시위대는 이라크 남부 시위대처럼 직접적인 반이란 구호를 외치지는 않지만 역시 친이란 세력인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과도한 권력과 영향력에 국가·정책이 휘둘리는 데 분노를 드러냈다.

"중동서 패권 키운 이란, 곳곳서 반대 시위 '부메랑'"
WSJ의 분석은 이번 중동 시위의 성격을 정부뿐만 아니라 이란에 대한 반발로 보는 서방 주류 매체의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라크 시위 현장을 담은 영상과 사진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혼재한다.

이란 매체는 시위대가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는 모습을 부각했다.

이란 지도부는 책임론을 벗어나려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가 각각 시위를 공작하고 자금을 댔다는 음모론을 꺼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지난달 30일 한 행사에서 "이라크와 레바논의 정책 당국자는 미국과 서방, 시온주의자(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조성한 혼란과 불안을 치유하기 바란다"고 연설했다.

"중동서 패권 키운 이란, 곳곳서 반대 시위 '부메랑'"
이번 중동 시위는 실업난과 빈곤에 좌절한 청년층이 앞장서 민생고 해소와 부패 청산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시작부터 정치·종파적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시위의 성격을 놓고 서방과 이란이 각자에 유리하게 규정하려는 여론전도 전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SOAS) 소속 이란·이라크 관계 전문가인 무함마드 알리 샤바니는 "민중의 분노는 주로 현재 지배 엘리트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란이 유일한 비판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몇 년 새 양국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혼란에 대한 책임론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중동 전문가 에밀리 호카옘은 "이란 정부는 경쟁 세력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인식으로 득을 보곤 했다"면서 "일단 친(親)이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고 나면 그들도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