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반정부 시위 어떻길래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발단
軍과 무력충돌…상점 약탈·방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무산시킬 만큼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칠레 시위는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발단이 됐다. 이를 계기로 수십 년간 누적된 고물가와 생활고, 빈부 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칠레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선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큰 국제행사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엘메르쿠리오 등 칠레 현지 언론들은 30일(현지시간)까지 시위로 최소 20명이 사망했고 7000명 이상이 연행됐다고 보도했다. 연행된 이들 중 3700여 명은 구금 상태다. 칠레 언론들은 “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정권이 물러난 이후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군경과 시위대 간 무력충돌이 격화됐고, 일부에선 방화와 약탈 등도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칠레 국민은 정부가 지난 6일 수도 산티아고의 교통 혼잡 시간대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약 1280원)에서 830페소(1330원)로 올린다고 발표하자 뛰쳐나왔다. 지난 1월 요금을 20페소 올린 지 10개월 만에 또 나온 인상안이다. 칠레 정부는 몇 주 전엔 전기요금도 올렸다.

처음엔 고교생들이 단체로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는 수준의 저항운동으로 시작했다. 차차 전국 규모 시위로 번졌다. 26일 산티아고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엔 1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산티아고 인구의 20% 수준이다. 일부 시위대는 지하철 시설을 부수기도 했다.

이는 그간 누적된 생활고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라는 게 주요 외신들의 설명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다. 인구 1%가 부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칠레의 청년층(만 15~24세) 실업률은 19.2%에 달한다.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반응도 공분을 키웠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사촌인 안드레스 차드윅 내무장관은 시위대를 두고 ‘범죄자들’이라고 표현했다. 후안 안드레스 폰타이네 경제장관은 “혼잡시간대 할증 요금을 내기 싫으면 더 일찍 일어나 출근하면 된다”고 말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시위가 격화하자 피녜라 대통령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26일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철회했다. 연금과 최저임금을 올리고 의료비 부담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내무장관, 경제장관, 노동장관 등 핵심 부처 장관 8명도 경질했다.

그러나 칠레 반정부 시위 강도는 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시위대는 대통령 사임, 새 헌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기존 헌법이 주요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한 탓에 연금은 지나치게 낮고, 의료비와 전기·수도요금은 너무 비싸다는 주장이다. 칠레 야당은 최근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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