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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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ECB의 통화정책은 과거와 달리 경기부양을 위한 힘을 잃고 있다”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과 결합할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기 내내 완화적 통화정책을 강조해 왔던 드라기 총재가 ‘통화정책이 힘을 잃고 있다’고 밝힌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ECB는 28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드라기 총재의 고별연을 열었다. 드라기 총재는 오는 31일 8년간의 임기를 끝으로 총재직에서 물러난다. 이날 고별연에는 다음달 1일 ECB 총재로 공식 취임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함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고별사에서 “통화정책이 과거처럼 경기부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략이 힘을 잃고 있다”(its strategy is losing potency)고 덧붙였다. 그는 “통화정책은 회원국의 재정정책과 결합할 때 부작용도 덜하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CB는 지난 9월 12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역내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종전 연 -0.4%에서 -0.5%로 낮췄다. 2016년 3월 이래 첫 인하다. 또 다른 정책금리인 기준금리(0%)와 한계대출금리(0.25%)는 동결했다.

ECB는 지난해 말 종료한 양적완화(채권 매입을 통한 시중자금 공급)도 다음달부터 재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통화정책만으로는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ECB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드라기 총재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며 EU 회원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송별사에서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살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드라기 총재가 2012년 연설에서 밝혔던 ‘필요한 모든 조치’(whatever it takes) 발언을 언급하며 “앞으로 유로존을 살리는 건 각 정부의 몫”이라고 밝혔다.

‘필요한 모든 조치’라는 세 단어는 드라기 총재 임기뿐 아니라 ECB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2012년 7월 유로존 재정위기가 극에 달했을 당시 드라기 총재는 이 세 마디 말로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런던에서 열린 한 연설에서 “ECB는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달라. 조치는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마이너스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유로존을 재정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켈 총리도 드라기 총재의 고별사에 화답했다. 그는 송별사에서 “통화정책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며 “각국 정부가 자신들의 숙제를 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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