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기각판결 잇따라…야권 "범죄는 있고, 범인은 없다는 것이냐"

필리핀 정부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와 측근에게서 부정축재 재산을 환수하려는 노력이 잇따라 좌절되고 있다.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집권 20년간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7천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재산은 1천726억 페소(약 3조9천억원)에 그친다.

26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은 지난 25일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와 측근 5명을 상대로 제기한 2억6천737만1천 페소(약 61억3천만원) 환수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정부 측이 부정축재의 증거라며 제출한 서류가 복사본인 데다 일부는 읽을 수도 없을 정도라며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설명했다.

반부패 특별법원은 이에 앞서 지난 8월과 9월에도 마르코스 일가에게 제기된 1천20억 페소(약 2조3천억원)와 10억 페소(약 229억원) 환수소송에서 모두 마르코스 일가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1987년 필리핀 대통령 직속 '좋은 정부위원회'가 마르코스 일가에게 제기한 재산환수 소송 가운데 지금까지 22건이 기각됐고, 19건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 소속인 카를로스 자라테 의원은 "반부패 특별법원이 마르코스 일가와 관련한 모든 소송을 기각하고 역사를 뒤집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마치 범죄는 발생했는데 범인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마르코스 일가는 인권 탄압과 부패 행위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멜다는 1992년 귀국해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3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딸 이미는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역임한 뒤 올해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주지사직은 손자인 매슈 마르코스 마노톡이 승계했다.

이멜다의 외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도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거쳐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일가의 지원을 받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마르코스의 시신을 국립 '영웅묘지'로 이장하는 것을 허용했다.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부정축재 재산환수 노력, 잇따라 좌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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