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지의 Global insight] 오피오이드 뭐길래…美 56조원 피해 소송전에 '시끌'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가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은 거대 제약사와 의약품 유통사, 약국 등이다. 이들은 공격적인 마케팅과 잘못된 정보를 담은 광고로 오피오이드의 과잉 처방을 부추겼다고 질타받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2017년에만 미국에서 4만7000여 명이 사망했다. 20년 전보다 6배 늘어난 수치다. 사망자 중 36%는 합법적으로 처방받은 오피오이드 때문에 죽었다. 처방 이후 강한 중독성 때문에 불법 헤로인에 빠진 사례도 많다.

미국 주정부와 카운티들은 오피오이드 피해자들을 대신해 제약사 등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테바, 존슨앤드존슨 등 내로라하는 제약사들과 아메리카리소스버진, 월마트 등 대형 유통회사가 피고다. 소송 건수만 2500여 건에 달한다.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미국 주정부들은 2500여 건의 소송을 일괄적으로 합의하는 방안을 피고들과 논의 중이다. 합의금으로는 수십조원이 입에 오르내린다.

오피오이드는 양귀비(opium poppy)에서 유래된 용어다. 마약성 진통제를 총칭한다. 흔히 알고 있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도 오피오이드의 한 종류다. 뇌에 보내는 통증 신호를 차단해 심각한 고통을 겪는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중독성이 있고 호흡 저하, 메스꺼움, 혼란 등의 부작용이 따른다. 크게 △처방 오피오이드(옥시콘틴, 비코딘 등) △합성 오피오이드(펜타닐 등) △불법 헤로인 등으로 분류한다.

오피오이드 처방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진이 전장에서 마취제로 모르핀을 사용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40만여 명의 군인이 모르핀에 의존하면서 문제가 됐다. 1898년 독일 바이엘이 생산한 헤로인을 수입해 모르핀 중독 치료제로 썼다. 그러자 이번엔 헤로인 중독 문제가 심해졌다. 미국 의회는 1914년 ‘해리슨 마약법’을 제정해 의사의 처방 없는 마약 소지를 원천 금지했다. 1924년엔 ‘반헤로인법’을 제정해 미국에서 헤로인 생산과 판매를 금했다.

그 이후에도 오피오이드의 법적 규제는 강화됐지만 처방 오피오이드는 안전하다는 잘못된 정보가 제약사, 유통사 등을 통해 퍼졌다. 오피오이드 소송 때문에 지난달 파산을 신청한 미국 제약사 퍼듀파마는 1995년 ‘옥시콘틴’이라는 오피오이드를 처음 선보이면서 “안전하고 중독성이 적다”고 광고했다.

지금까지도 오피오이드는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 평범한 환자였던 이들은 오피오이드 중독 증세가 심화하면서 가족·친구 명의로 오피오이드를 처방받거나 거리에서 불법 헤로인을 구했다. 펜타닐 등 더 강한 진통제를 찾기도 했다. 펜타닐은 2002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인질극 때 러시아 경찰이 살포하면서 알려졌다. 그 자리에서 범인과 인질 100여 명이 죽었다. 헤로인 진통 효과의 50~100배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미국 정부는 뒤늦게 오피오이드 사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2016년 3월 미국 CDC는 오피오이드 처방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고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오피오이드 위기대책위원회를 설립했다. 오피오이드 관련 소송이 본격화한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오피오이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에서도 오피오이드 약물 남용으로 지난해 4000여 명이 사망했다. 호주 영국 등도 오피오이드 복용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만병통치약’ 오피오이드의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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