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일본 정부는 전격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의 대한(對韓)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체제가 중요하다’는 내용의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이 나온 지 1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日, 對韓 수출규제 넉 달째…합의점 못찾고 평행선
일본이 일방적으로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한 이후 한·일 갈등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수출규제 강화 이후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허가를 단 8건(불화수소 3건, 포토레지스트 4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만 내줬다. 이에 한국 정부는 자유무역 원칙을 어긴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며 정면 대결을 택했다. 한국은 또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선언하는 등 경제에 역사 문제를 끌고 온 일본에 대항하고 있다.

한·일 양국 간 대립이 심해지면서 경제 협력과 교역도 약화되고 있다. 지난달 일본의 한국으로의 수출은 4027억엔(약 4조35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9% 감소했다. 맥주 등 식료품(-62.1%)과 반도체 제조장치(-55.7%), 승용차(-51.9%) 등의 수출 감소폭이 컸다. 인적 교류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9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20만12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1% 줄었다.

이 같은 교역과 교류의 감퇴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 24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처음으로 최고위급 회담을 열었지만 한·일 양국 간 간극은 여전히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혜택을 크게 봤던 일본이 이웃나라인 한국에 급격하게 반(反)자유무역적 태도를 보이게 된 데엔 최근의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많다. 냉전의 종식 및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더 이상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꺼리면서 자유무역 시스템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