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적국이 더 이상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멋지지 않은가.”

美, 셰일혁명 덕에…달러·군사력에 '석유 패권'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5월 대선 캠페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면 미국은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성취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직후부터 에너지 독립에 박차를 가해왔다. 멕시코만 연안의 석유 시추를 위해 국유지를 경매에 부쳤고, 40년 만에 북극 인근의 국립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도 시추를 허용했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파이프라인 공사도 줄줄이 허용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막강했다. 경제력 군사력 모두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석유가 부족했다. 소비가 많은 데다 알래스카와 연안 지역에서의 원유 채굴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산유국임에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가 터지자 큰 고통을 받았다. 유가를 안정시키는 건 미국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은 중동에 항공모함 두 척을 상시 배치하는 등 강한 군사력을 투입해 유가를 안정시켰다. 세계 최대 원유매장량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보호를 받으며 중동의 맹주가 됐다. 미국이 맡은 세계 경찰 역할은 중동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지로 확산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부족한 게 없다. 셰일오일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미국은 작년 하반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다. 또 올해 처음으로 순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지난주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량은 862만 배럴로 수입량 799만 배럴을 넘어섰다.

미국은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에 한꺼번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메건 오설리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유가 상승기에도 산유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동시에 공격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맹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 9월 사우디가 주요 석유시설을 공격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소행”이라면서도 군사 대응을 피했다. 에너지 독립이 가능해지자 이익이 없는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7월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보호주의 무역을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이 같은 ‘미국 우선주의’의 바탕엔 세계화, 이민 등에 지친 백인들의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의 역풍으로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 일자리를 잃은 백인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표밭이었다. 피터 자이한 안보전략가는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없는 세계>에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해야 할 마지막 동기마저 사라졌다”며 “미국은 전략적으로 기존 세계를 유지하기보다 허물게 될 것”이라고 썼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