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얘기할 때 자주 쓰는 비유가 하나 있다. ‘타임머신’이다. 한국에서 ‘개발 연대’ 시절을 보낸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하노이나 호찌민시 곳곳을 다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의 1980~1990년대 같구만’.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도로에 가득하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휴대폰 화면에 꽂혀 있다는 정도만 다를 뿐, 베트남은 모든 것이 개발과 발전을 위해 쉼없이 돌아가던 그 시절 한국의 모습을 닮았다. 어쩌면 신기루일 지도 모를 성공을 좇아 수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베트남을 향해 달려드는 건 먼 미래에서 온 앞선 인류라는, 역시 신기루같은 자부심 때문일 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인’은 타임머신이란 특권을 얻는 대신에 그 만큼의 댓가도 치러야한다. 최근 약 한 달간의 ‘하노이 살이’는 그 댓가가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20~30년 전 한국의 대도시가 치러야했던 값비싼 고통들이, 지금 하노이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하노이는 걸핏하면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도시에 등극하고, 도심 한복판에서 수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수은이 퍼졌으며, 상수도가 폐유로 오염돼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정부 비판을 자제하는 베트남 언론조차 반복되는 인재와 이를 막지 못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을 정도다. 베트남의 한 영자신문은 10월18일자 뉴스에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가난한 자의 고통, 되돌이표 정부”.

현재 하노이는 과거엔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 사회의 징후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환경 오염이 대표적이다. 인구 1000만명을 웃도는 하노이의 대기 질은 세계 최악이다. 미세먼지의 도시로 유명한 베이징을 이미 넘어섰다. WHO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매년 6만명 이상이 나쁜 공기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물 오염도 심각한 상황이다. 하노이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호떠이(서호)에서조차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의 사체를 곳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하노이 도심을 관통하는 하천은 각종 생활 오폐수 등으로 늘 먹빛이다. 지방 소도시의 강, 하천, 바다는 여과되지 않은 산업용 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발생한 상수도 오염으로 ‘위험 사회’ 하노이는 그 본 모습을 드러냈다. 10월8일 하노이 서북쪽 호아빈에 있는 ‘다(da)’라는 이름의 강이 폐유로 오염됐다. 사건 발생 뒤 약 1주일에 채취한 시료에서조차 독성발암물질인 스타이렌이 정상 수치보다 1.3~3.6배 검출됐다. 이로 인한 하노이의 혼란은 극심했다. 정부 발표가 있던 16일 하노이 시민들은 정부가 제공한 식수차에서 물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고급 아파트들은 부랴부랴 오염된 물이 담긴 탱크를 비우고, 새로운 물을 담느라 하루종일 단수를 실시했다. 약 8만명의 하노이 거주 한인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형마트의 생수가 금새 동나버렸다. 대표적인 한인 거주지역인 미딩에선 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한국행 티켓을 끊어야 했다.

이날의 풍경을 옮기며 베트남의 한 영자지 칼럼은 “산모가 모아 둔 모유를 버렸다”고 적었다. 1991년 대구폐놀사건을 연상케하는 문장이다. 28년 전의 그날에 한국의 산모들 역시 분노와 울분에 떨며 모아 둔 모유를 땅에 뿌렸다. 하노이 시민들이 특히나 경악한 건 베트남 정부의 늑장 대응이다. 사고가 발생한 건 8일이다. 수돗물에서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는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서야 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6일 뒤인 14일 오전, 자원환경부 환경총국 부국장이 정기 기자회견 자리에서 오염 사실을 확인하고, 호아빈성 인민위원회에 기름을 유출한 주범을 확인할 것으로 요청했다. 또 다시 이틀 뒤인 16일에야 하노이 인민위원회는 상수원 오염으로 인한 피해지역을 공식 발표했다. 식수 사용 금지 및 수도관 교체 등은 이날 이뤄졌다. 주하노이 한국대사관이 각종 한인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린 것 역시 16일이었다.

베트남을 위협하는 또 다른 위험 징후는 극심한 빈부 격차다. 하노이만해도 주변 농촌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부자와 빈자의 극명하게 다른 삶이 노출되고 있다. 하노이 고급 아파트 지하 주차장엔 벤츠, 아우디, 포르쉐 같은 수억원을 호가하는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인근 골프장은 공장 노동자의 한 달치 월급쯤은 가볍게 하루에 쓸 수 있는 베트남 부자들로 넘쳐난다. 한인과 베트남 사람들이 같이 다니는 국제학교에선 현지 부유층의 자제들이 또래 한인 친구들을 비하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반면, 서민들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자식들을 최소한 고교라도 졸업시키기 위해 하노이에 왔다는 한 여성은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오로지 노동에만 몸을 바친다. 그녀의 숙소는 10명이 모여 사는 허름한 여인숙. 하루 방값은 0.35달러다. 남편은 농촌에서 돼지를 키우지만 1년을 일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60달러다. 하노이 도심 거리에서 꽃과 과일을 파는 대부분의 농촌 여성들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이산의 삶을 살고 있다. 한 달에 열 번 정도씩 시골 집으로 향하지만 그때마다 가져다줄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20달러 정도다.

베트남이 중진국, 더 나아가 그들의 열망대로 OECD에 가입하려면 위험 사회의 징후들을 조기에 제거해야 할 것이다. 베트남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있다. 얼마 전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부자와 빈자의 간극을 메우자며 정부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교육과 보건 분야 투자를 늘리기 위한 방안 마련에도 고심중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팔을 걷어부쳤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외국 자본은 사절이다. 최근 베트남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하노이를 방문한 한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 관계자는 “가스 발전소를 지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베트남에서 9개의 산업단지를 조성한 싱가포르계 글로벌 기업인 샘콥은 베트남 정부와 단지 내 주요 에너지원을 태양광으로 대체하는 프로젝트 협약을 맺었다. 베트남 정부의 관심사가 변하면, 이는 한국의 베트남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에 투자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법이다. 저임금을 노린 단순 제조업 투자만으로는 베트남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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