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분쟁심의위원 역임 전문가 NHK 인터뷰서 예상
1심 불복시 2심 '기능마비'로 '구속력 있는 판단' 얻지 못할 가능성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를 둘러싼 한일간 무역분쟁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이어질 경우 한국은 어렵지 않게 일본의 조치가 차별금지 규정에 위반된다는 걸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WTO 분쟁처리기구 위원을 지낸 전문가가 11일 말했다.

반면 수출제한 이유로 안보상의 우려를 내세운 일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한국기업이 무역관리를 태만히 했다는 근거를 일본 측이 확실히 제시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재작년까지 8년간 WTO 분쟁처리기구의 2심격인 '상급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한 피터 반 덴 보쉬 스위스 베른대학 교수는 이날 보도된 NHK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한국, WTO서 日수출규제 '차별금지 위반' 입증 쉬워'"
한국은 일본의 수출제한조치가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이 정한 회원국간 차별금지와 수량제한 금지원칙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반 덴 보쉬 교수는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3개 품목의 수출심사절차 간소화 우대조치를 받는 국가가 한국 이외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조치가 차별금지를 규정한 관련 규칙 위반이라는 걸 입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의 조치가 2차대전 '징용' 관련 법원판결과 관련,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차별이나 수량제한 금지규정에 정치적 동기가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WTO 심리에서는 배경보다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가 중요시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수출규제 이유로 안보상의 우려를 들고 있다.

한국으로 수출된 반도체 등의 원자재가 군사 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데도 한국 측의 무역관리에 부적절한 사례가 발견됐다며 안보상의 우려가 확실하기 때문에 규정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 덴 보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은 안보상 목적이 있으면 예외를 인정한 GATT 규정을 근거로 내세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그러나 WTO 회원국들은 이 규정이 남용돼 무역상 예외조치가 늘어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본이 이 규정을 근거로 안보상 우려를 주장할 경우 "원자재가 북한으로 넘어가는 등 한국기업이 적절한 관리를 태만히 했다는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제시하는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2심격인 상급위원회는 WTO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신규위원 승인을 거부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올해 12월 기능마비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반 덴 보쉬 교수는 "1심격인 소위원회의 판단이 나오는 건 내년 이후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과 일본 어느 한쪽이 소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2심 심리를 진행할 수 없어 양측 모두 법적 구속력을 갖는 최종 판단을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WTO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둘러싼 WTO 분쟁해결기구의 심리가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