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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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시즌을 맞아 일본이 또다시 들썩이고 있습니다. 9일 일본 화학자 요시노 아키라(吉野彰·71) 아사히카세이 명예 연구원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 되면서 2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요시노 연구원은 일본 국적자로는 25번째, 일본 출신까지 포함하면 28번째 수상자입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상 초강국입니다. 미국에 이어 2000년대 노벨상 수상자수에서 독보적인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는 ‘주요2개국(G2)’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입니다. 특히 2014년 물리학상, 2015년 생리·의학상, 2016년 생리·의학상을 3년 연속 수상했고, 지난해와 올해도 연이어 수상하면서 일본인 노벨상 수상은 연례행사처럼 되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각종 분야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일본인 수상 후보를 꼽고 있는데 각 분야마다 수상 후보군을 풍부히 갖춘 점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의 ‘그늘’도 감지되는 분위가 느껴집니다. 노벨상 수상의 명분이 된 신기술 개발과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높이 평가해야하는 것이지만 그 과학적 성취의 결과를 일본이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는 현상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요시노 연구원이 처음 개발한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입니다. 요시노 연구원은 1985년 세계 첫 상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든 인물로 꼽힙니다. 요시노 연구원이 출원한 특허를 활용해 소니가 1991년 세계 최초로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에 리튬이온배터리를 채택하며 관련 산업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리튬이온배터리가 상용화된 것을 바탕으로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EV)시대도 열리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후지경제에 따르면 2022년 리튬이온배터리 세계시장 규모는 7조4000억엔(약 81조9000억원)수준으로 2017년 대비 2.3배 성장할 것으로 점쳐졌습니다.

일본 연구실 모습. 일본 이화학연구소 제공

일본 연구실 모습. 일본 이화학연구소 제공

하지만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관련 시장을 개척했지만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에서 일본기업의 위상은 최근 들어 많이 추락한 상황입니다. 파나소닉, 아사히카세히, 도레이, 히타치화성, 스미토모금속광산, 미쓰비시케미칼, 쇼와덴코, 도시바 등 일본기업들은 배터리 소재·부재 분야에선 아직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상용화 분야에선 한국과 중국에 힘이 부치는 모습이 뚜렷합니다.

특히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EV용 배터리 시장 경쟁에서 중국과 한국 기업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2017년 현재 차량용 리튬이온배터리시장 점유율은 중국 CATL이 15.5%로 일본 파나소닉(14.6%)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BYD와 한국 LG화학, 삼성SDI가 점유율을 계속 높이며 일본 업체가 설자리를 밀어내는 모습입니다. 닛산자동차와 NEC는 지난해 공동출자해 만든 배터리 업체를 중국기업에 매각키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 실용화에 성공했던 소니도 2017년에 배터리 사업을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한국 업체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의 대표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도 올 6월 중국 CATL, BYD 등과 EV용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키로 하는 등 시장구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과 노벨상의 기반이 된 연구의 과실을 즐기는 것은 별개인 상황이 확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혼조 다스쿠(本庶佑·77) 교토대 특별교수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개발된 암 치료제 ‘옵디보’의 제조·판매사인 오노약품공업과 특허사용료를 둘러싼 소송을 벌이는 등 연구성과의 실용화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일본인 노벨상 수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잇따라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현재 70~80대의 ‘황금세대’이후에도 수상자가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이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원인으로는 흔히 △과학자들의 순수연구 중시 풍조 △긴 안목의 장기 연구프로젝트 추진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연구지원 △100년이 넘는 연구역사로 축적된 지식과 넓은 연구풀 등이 주로 지목됩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매진하는 일본인 특유의 ‘한 우물 파기’ 장인정신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특성이 집약된 연구세대가 현재 노벨상을 수상하는 세대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선 과학 분야 연구예산은 물론 연구 성과에서도 미국, 중국 등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 과학계를 한국은 무척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잇따른 노벨상 수상은 오랜 지적 투자와 축적의 시기를 거친 뒤에 거둔 결실일 것입니다. 이와 함께 노벨상 수상은 큰 영광이지만 수상의 기반이 된 연구성과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 일본 사회는 잇따른 노벨상 수상을 기뻐하고 있지만 일본이 처한 과학계·산업계 구도를 고려하면 마냥 축하만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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