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가 뒤덮은 '브렉시트 대혼돈'
이달 말로 예정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한을 앞두고 영국 내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브렉시트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보리스 존슨 총리와 브렉시트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회 간 정쟁이 계속되고 있다. 의회에서는 존슨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존슨 총리는 ‘설사 여왕이 명한다 하더라도 어림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복수의 영국 보수당 소식통을 인용해 존슨 총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는 31일 유럽연합(EU) 탈퇴를 강행할 것이며 그 전에 사임하는 일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여왕이 존슨 총리의 해임을 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존슨 총리는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보라’라고 나올 기세다”라며 “경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직접 관저에 찾아간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블룸버그통신은 브렉시트 연기를 요구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원이 여왕에게 존슨 총리를 해임하도록 요청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험블 어드레스(Humble Address·하원이 군주에 보내는 메시지)’다. 영국 하원이 지난달 4일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는 EU 탈퇴) 방지를 위해 브렉시트 시한을 2020년 1월31일까지 3개월 연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존슨 총리가 이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왕에게 개입을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당과 보수당에서는 이미 차기 총리 후보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회에서 존슨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커지고 있는 건 그가 내놓은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이 EU로부터 ‘퇴짜’를 맞으며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존슨 총리는 지난 2일 지금까지 브렉시트 협상에 걸림돌이 됐던 ‘안전장치(백스톱)’의 대안으로 북아일랜드만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EU 단일시장에 잔류시킨다는 내용의 최종 제안서를 EU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지난 5일 “영국이 여전히 협상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 주 내로 다른 제안서를 보내와야 할 것”이라며 존슨 총리의 제안서를 거절한다는 뜻을 밝혔다.

존슨 총리가 17~18일로 예정된 EU 정상회의 이전에 EU와의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노딜 브렉시트와 브렉시트 연기 두 개 선택지만 남게 된다. 하지만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연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결국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 할 것이란 우려가 퍼지고 있다. 존슨 총리는 지난 2일에도 EU에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을 제출하면서 “이것이 최종안이다. EU (정상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예정대로 31일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AFP통신은 이날 영국 정부가 EU 집행위를 상대로 추가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자며 대화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존슨 총리의 새로운 브렉시트 협상안이 거절된 것과 관련해 이에 대해 재차 논의하자고 EU 측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 바클레이 영국 브렉시트부 장관은 BBC 인터뷰에서 “새 협상안이 영국 의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걸 EU에 보여주기 위해 EU 정상회의 전에 의회 표결에 부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