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캔들은 前정권 조작" 의혹 밝힌다며 이탈리아 방문
사법부 정치중립 전통 깨지나…美정국위기 불똥 동맹국으로 튀어
美법무는 트럼프 개인변호사?…'딥스테이트' 음모론 조사 논란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이 '러시아 스캔들'을 전 정권이 조작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음모론을 입증하겠다며 관련 조사를 진두지휘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 대선에 러시아 정부가 해킹과 여론조작 등 수법으로 개입한 사건이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와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정부 내 기득권 세력(딥스테이트·deep state)이 주요 동맹국과 결탁해 러시아 스캔들을 꾸며냈다고 주장해 왔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바 법무장관은 지난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를 방문해 이탈리아 정보당국 수장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

바 장관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된 경위를 조사하는 미 법무부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회동에는 조사 책임자인 존 더럼 코네티컷주 연방검사장도 동행했다.

더럼 검사장은 과거 CIA의 재소자 고문 의혹과 FBI의 기밀정보 유출 의혹 등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자국 외교관과 정보 당국자들을 믿지 못한 듯 바 장관의 이탈리아 회동은 관련 부처나 현지 주재 FBI 담당관을 통하는 외교적 관례를 우회해 이뤄졌다.

美법무는 트럼프 개인변호사?…'딥스테이트' 음모론 조사 논란
이탈리아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의 외교 정책 고문이었던 조지 파파도풀로스가 로마 모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말타인 미프수드로부터 "러시아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에게 흠집이 될 만한 이메일 수천통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장소다.

이후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미프수드는 종적을 감췄다.

로버트 뮬러 특검은 그가 러시아 정보기관의 메시지 전달 요원(cutout)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프수드가 트럼프 캠프를 염탐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파견한 CIA 요원이라고 주장한다.

파파도풀로스 본인은 지난달 27일 트위터에 "미프수드는 CIA의 조종을 받는 이탈리아 정보원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이날은 바 장관이 이탈리아 정보당국과 접촉하기 위해 로마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바 장관은 이밖에 영국과 호주 당국자들과도 직접 접촉해 관련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스캔들 수사 착수 경위 조사의 전권을 부여받은 바 장관은 이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직접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사법부나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 여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진행돼야 할 조사에 일일이 관여함으로써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전통을 위협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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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와 호주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외세의 개입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는 4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알다시피 나는 수사를 받았다"면서 "'그들'은 그게 영국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게 호주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이탈리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았으나, 러시아 스캔들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지지자들을 지칭한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린지 그레이엄(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이달 초 영국과 이탈리아, 호주 총리에게 관련 조사에 협력해달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호주 외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다우너 전 영국 주재 호주 고등판무관이 음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너는 2016년 중순 런던에서 파파도풀로스로부터 "러시아가 클린턴에게 불리한 이메일 수천건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보고해 미국 정부에 전달되도록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 하키 미국 주재 호주 대사는 "그의 역할에 대한 당신(그레이엄 상원의원)의 규정을 거부한다"고 즉각 반박했다.

美법무는 트럼프 개인변호사?…'딥스테이트' 음모론 조사 논란
트럼프 진영이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 진영을 겨냥한 공세를 펼치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일각에선 이런 행태가 주요 동맹국과의 관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이탈리아에선 바 장관과 자국 정보당국 수장간 회동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진 주세페 콘테 총리가 절차를 무시해 국격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정보기관과 방첩 분야 당국자들도 바 장관이 자신들을 우회해 정치 지도자들과 접촉한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미 야권을 겨냥한 조사에 협조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려 녹취록 공개 압박을 받는 신세가 됐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인 마크 워너(민주·버지니아) 상원의원은 "호주 정보당국이 (미국) 국내정치용 정보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신뢰가 약해질 수 있다"면서 서방 5개국 정보협의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참여국 간 관계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