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EPA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사진=EPA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는 “EU(유럽연합)가 전 세계 강대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재정통합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EU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시급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드라기 총재의 이 같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통합 및 재정확대 방침에 대해 독일 및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반대가 거세 향후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달 임기 종료를 앞둔 드라기 총재는 2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중앙은행의 부담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정부의 재정정책 지원이 없다면 임시방편식 통화정책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드라기 총재는 지난 23일 유럽의회에 출석해 “유럽 각국이 경기를 부양하려면 재정지출에 대해 유연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재가 EU 회원국의 재정지출 확대를 연일 촉구하는 것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유럽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경제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이 지난 23일 발표한 독일의 9월 제조업 PMI는 41.4로,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합성 PMI도 49.1로, 최근 8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유로존의 9월 제조업 PMI 역시 45.6으로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서비스업 PMI는 52.0으로 전달(53.5)보다 하락해 제조업 경기 둔화가 서비스업까지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ECB는 지난 12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역내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를 종전 연 -0.4%에서 -0.5%로 낮췄다. 2016년 3월 이래 첫 인하다. 또 다른 정책금리인 기준금리(0%)와 한계대출금리(0.25%)는 동결했다. ECB는 지난해 말 종료한 양적완화(채권 매입을 통한 시중자금 공급)도 오는 11월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통화정책만으로는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ECB의 판단이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의 재정통합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로존이 전 세계 강대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재정통합에 대한 장기적인 약속이 필수적”이라며 “더 강력한 EU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통의 유로존 예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ECB가 맡지만 재정정책은 회원국이 독자 운영한다. 다만 회원국의 경제적 격차 축소 및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EU는 재정정책 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을 시행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 정부부채는 GDP의 6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2011년 남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 이후 이 재정준칙은 지금까지 엄격하게 지켜져왔다. 그러나 올 들어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이 재정준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EU 독립자문기구인 재정위원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재정준칙이 경제가 어려운 국가를 경기침체로 몰아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통화정책만으로는 경기 부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유로존의 단일화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유로존의 재정통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연방예산처럼 유로존 재정통합이 경기활성화에 필요하다는 것이 드라기 총재를 비롯한 재정통합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다만 재정여력이 충분한 국가들은 재정준칙 규제 완화 및 재정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유로존 경제대국들은 찬성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부채 비율이 유로존 평균에 비해 높은 국가들이다. 드라기 총재는 이를 의식한 듯 “유로존 재정통합에 대한 정치적 논쟁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다만 “몇 년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며 “재정통합은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EU 28개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그리스로, 181.1%에 달한다. 이어 △이탈리아(132.2) △포르투갈(121.5%) △키프로스 (102.5%) △벨기에(102.0%) △프랑스(98.4%) △스페인(97.1%) △영국(86.8%) 등의 순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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