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흥국 펀드 수익률이 개선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가 급등이 국가별 명암을 가를 새 변수로 떠올랐다. 전설적 신흥국 투자 전문가인 마크 모비우스 모비우스캐피털파트너스 설립자는 “(아람코 생산설비가 폭격을 당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할 수 있는 브라질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올랐다”고 주장했다.산유국인 러시아 증시도 상승세를 탔다. 반면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인 인도는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반등하는 신흥국 증시MSCI신흥국지수는 지난달 23일 이후 7.31% 상승했다. 한국 중국 대만 등 주요 신흥국 증시가 반등한 영향이다. 한국의 추석 연휴 기간에 들려온 소식은 신흥국에 긍정적이었다.미국과 중국이 다음달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태도 전환에 나서면서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개선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강력한 경기 부양 의지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한동안 신흥국 증시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던 전문가들도 태세를 전환했다. 토마 폴라우엑 티로프라이스 멀티에셋솔루션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각국 정부의 통화정책이 긴축에서 완화로 돌아서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줄었다”며 “세계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고려했을 때 올해 선진국보다 낙폭이 컸던 신흥국의 투자 매력이 높다”고 말했다.이런 가운데 신흥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14.7% 급등한 62.90달러에 장을 마쳤다. 2008년 이후 11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모비우스 “브라질 반사이익 클 것”신흥국 중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브라질과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볼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모비우스 설립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피격 소식에도 신흥국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매장량을 고려할 때 브라질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브라질의 원유 생산량이 2035년까지 7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러시아 증시도 상승세를 탈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 증시의 시가총액에서 에너지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에 이른다. 펀드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브라질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13.55%, 러시아 주식형펀드는 25.19%를 나타냈다.반면 인도 펀드에 대한 전망은 어두워졌다. 인도 주식형펀드는 최근 석 달 새 8.78% 손실을 봤다. 올해 2분기 인도 경제성장률이 6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유가 상승이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인도의 전체 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며 “인도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로 증시 반등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개인은 유가 하락에 베팅국제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원유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등이 대표적이다. WTI 선물 가격에 연동하는 ‘신한 WTI원유 선물 ETN’은 17일 340원(4.03%) 상승한 8785원에 마감했다. 이틀간 7.53% 급등했다. 이 상품의 거래량은 평소의 10배 수준으로 늘었다.이런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은 WTI 등락률의 반대 방향으로 두 배만큼 움직이는 ‘신한 인버스 2X WTI 원유 선물 ETN’을 48억원어치 순매수해 ‘청개구리 투자’에 나섰다. 단기 급등한 유가가 조만간 하락 반전할 것이란 투자 판단이다.하지만 이런 전략은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사우디의 원유 생산 차질은 다른 원유 생산국의 공급량 증대로 보완하기 어렵다”며 “유가가 단기간에 7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최만수/강영연 기자 bebop@hankyung.com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이 공격당한 지 이틀째인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국제 원유 시장은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사우디 원유 생산 정상화까지 여러 달이 걸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69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아람코가 예상보다 빠른 몇 주일 정도면 피습당한 석유시설의 복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브렌트유는 배럴당 65달러 정도로 내려갔다. 공격 전 배럴당 60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지만 고점인 72달러는 크게 밑돌았다.시장에선 두 가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습당한 사우디 석유시설을 복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와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어디로 흘러갈지이다. 이날 유가가 좁은 폭에서 움직인 것은 석유시설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과 전쟁은 터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엇갈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사우디 아람코 설비 피해 현황에 정통한 네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원유 생산 정상화까지 여러 달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아람코가 “몇 주일이면 복구가 끝날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FT 보도가 맞다면 유가는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FT가 인용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람코는 이번 공격으로 아브카이크 단지 내 탈황탑 절반가량이 피해를 당했다. 안정화설비는 18개 중 5개가 가동 불능 상태다. 2016년까지 아람코 고문을 지낸 필립 코넬 아틀란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통신에 “탈황시설 부품 확보에만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탈황시설은 정기 보수작업에만 통상 석 달가량이 걸린다”며 “부품을 교체할 정도로 훼손됐다면 복구 기간은 더 길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골드만삭스는 사우디의 시설 복구 소요 시간별 유가 전망을 내놨다. 복구가 △1주일 내에 끝나면 배럴당 3~5달러 △2~6주 걸리면 5~14달러 △6주 이상 걸리면 15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종은 브렌트유이고 기준 유가는 배럴당 60달러다. 복구에 한 달 반 이상 걸리면 유가가 25% 이상 뛸 것이란 예상이다.원자재 거래 기업 트라피규라의 사드 라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은 이제 세계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은 전날보다 대폭 낮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누구와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고,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지금 당장은 이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현재로선 이란의 소행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의 군사 공격이 있을 경우 사우디 시설 공격에 대한 비례적 대응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유럽 각국이 신중론을 펴는 것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독일과 영국 정부는 각각 이번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월가는 하지만 상황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월가는 사우디나 미국이 이란에 군사 행동을 취해 전쟁이 난다면 국제 유가는 곧바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갑자기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미국의 경제 지표가 예상외로 나아지고,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희망이 살아나던 와중에 갑자기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이 발생해 미·이란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에 따라 16일 뉴욕 금융시장에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면서 다우 지수가 142.7포인트(0.52%) 하락했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다시 1.8%대로 떨어졌습니다. 또 안전자산인 금과 엔화 등이 모두 강세를 보였습니다.이번 공격은 매우 중요한 타이밍에 이뤄졌습니다.유엔총회에 맞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란 로하니 대통령의 '조건없는' 회담설이 나도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매파'인 존 볼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해고했습니다. 프랑스 등 유럽은 그동안 이란핵합의를 살리기 위해 배후에서 미이란 회담 준비를 위해 뛰어왔습니다. 볼튼 해고로 양국간 화해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왔습니다.이럴 때 이번 공격이 터지자 양국 화해가 아니라 회동 가능성까지 희박해졌습니다.가장 헛갈리는 건 누가 사우디를 공격했는가 입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란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월가에서는 공격의 배후를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핵심은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 지 따져보는 것이겠지요.가장 많이 나도는 설은 이란 내 강경파와 미국 딥스테이트(Deep State)의 합작론입니다. 이란내 매파인 혁명수비대 등이 공격을 하고, CIA 등은 이를 미리 알고도 묵인했거나 혹은 공격을 부추겼다는 시나리오입니다.이란의 혁명수비대는 이란내 '온건파'로 꼽히는 로하니 대통령의 지휘를 받지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입니다. 미국과 이란이 화해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이는 미국 딥스테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워싱턴 정치권 출신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CIA, FBI 등 딥스테이트 핵심들을 멀리해왔습니다. 거기에 볼튼의 해임으로 딥스테이트는 더 영향력을 잃을 처지에 처했습니다.이번 공격으로 이란과의 딜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군산복합체로 상징되는 딥스테이트는 영향력을 확보하고 무기를 많이 팔 수 있게됩니다. 실제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에너지 주식과 함께 방산업체 주가가 급등했습니다.또 다른 설은 첫번째 설과는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번 공격이 이란과의 딜을 위한 미국 정부의 사전 설계라는 시각입니다.이란과 딜을 한다면 유가는 폭락할 겁니다. 협상은 원유 수출 제재를 풀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이란의 제재 이전 하루 원유 산출량은 400만배럴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최근 하루 수출량이 50만배럴 이하까지 떨어진 가운데 제제가 해제된다면? 유가는 폭락하면서 에너지 산업 비중이 커진 미국의 경제도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안그래도 유가 하락으로 미국 셰일 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텍사스 지역엔 난립했던 중소 셰일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오일 시추기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잘 보면 이번에 사우디에서 가동이 중단된 유전과 탈황설비의 하루 처리 규모는 370만배럴(200만배럴 규모는 16일 가동 재개 예정)로 이란의 제재가 해제되면 세계 원유시장에 흘러나올 산유량과 비슷합니다.딜에 대비에 미리 세계 원유시장 공급량을 줄여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중동 위기는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를 하도록 압박하는 요인도 될 수 있습니다.사우디 입장에선 주요 석유설비 가동이 중단돼 당장은 손해일 수 있습니다.하지만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앞둔 입장에서 이번에 누적된 원유 재고를 대거 처리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기반으로 유가를 상승 추세로 되돌릴 수 있다면 회사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게다가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카쇼끄지 암살 사태로 인해 아직도 미국에 코가 꿰어있는 상황입니다.그동안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을 대부분 격추했던 사우디가 이번에 핵심 석유시설을 무방비로 뚫린 데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미국은 이란을 공격자로 몰아가고 있고 중동의 위기는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당분간 세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