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미국 'INF조약 탈퇴' 후폭풍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미사일 패권 경쟁에 들어갔다. 32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미사일 개발을 억제해온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지난달 2일 공식 탈퇴하면서다. 미국은 INF조약 탈퇴 후 하루 만에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의사를 공개했다. 또 탈퇴 16일 만에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는 등 미사일 전력 증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미·중·러 간 신냉전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탈퇴한 지난달 2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주독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탈퇴한 지난달 2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주독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면을 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32년간 미사일 경쟁 억제한 INF 폐기

INF조약은 미국과 옛 소련이 1987년 12월 체결한 군축 합의다. 재래식 또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했다.

당시는 미·소 냉전이 한창일 때였다. 소련은 197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을 겨냥한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SS-20을 배치했고, 미국이 중거리 탄도미사일 퍼싱-2의 유럽 배치로 맞불을 놓으며 대치를 이어가던 상황이었다. 1985년 개혁파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등장으로 전기가 마련됐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중거리 미사일 전력 감축에 공감대를 이룬 뒤 이듬해 12월 백악관에서 INF조약에 서명했다. 이듬해 6월 INF조약이 발효됐고 이후 3년 만에 미·소는 총 2692기(미국 846기, 소련 1846기)의 미사일을 제거했다. 1991년 5월 11일 소련이 마지막 SS-20을 제거했고, 그 직전 미국도 마지막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없앴다.

INF조약을 시작으로 미·소는 1991년 7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맺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감축에 합의하며 핵군비 통제의 기틀을 다졌다. INF조약이 미·소 냉전체제 종식의 출발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중거리 미사일, 中 1150 vs 美 0…뿔난 美, 무한 군비경쟁 돌입

중국과 ‘미사일 불균형’ 미국, INF 탈퇴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된 뒤 소련의 INF조약 이행의무는 러시아가 승계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조약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수시로 갈등했다. 특히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년부터 “러시아가 INF조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해왔다.

INF조약을 노골적으로 불신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러시아가 2017년 이후 사거리 2000~5000㎞인 9M729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을 ‘조약 위반’으로 문제삼아 지난해 10월 INF조약 탈퇴 방침을 밝혔다. 이후 6개월간의 탈퇴 유예기간에 미국과 러시아는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미국은 지난달 2일 INF조약에서 공식 탈퇴했다. 러시아도 이날 미국의 탈퇴에 맞춰 INF조약을 폐기했다.

미국의 INF 탈퇴는 표면적으론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이지만, 그 이면엔 중국과의 ‘미사일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 미 국방부가 지난 5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사거리 1000~5000㎞가량의 중거리·중장거리 탄도미사일(지상형 순항미사일 포함)을 1150기 보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거리 5000㎞ 안팎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160기, 사거리 1000~3000㎞인 중거리 탄도미사일(MRBM)과 지상형 순항미사일(GLCM)이 각각 450기와 540기다. 사거리 1000㎞ 정도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사거리 3000㎞ 이상이면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이런 미사일이 전무하다.

중국은 사거리 300~1000㎞가량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도 750기나 보유하고 있다. ‘미사일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모든 사거리의 미사일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ICBM 전력에서 중국을 압도하고, 사거리 300㎞가량의 SRBM도 일부 보유(에이태킴스 미사일)하고 있지만 다른 미사일 전력에선 중국에 뒤진다. 미국이 INF조약에 얽매여 있는 사이 중국이 미사일 개발을 늘렸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미 의회에서 “중국이 배치한 탄도·순항미사일의 95%가 INF조약 가입국이라면 조약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INF조약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해상·공중발사형 중장거리·중거리 미사일로 전력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해상·공중발사형은 지상발사형보다 안정성과 억제력이 떨어진다. 미국이 INF조약 탈퇴 직후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국가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방침을 밝힌 배경이다. 과거엔 미·소가 서유럽을 무대로 중거리 미사일 경쟁을 벌였다면, 이번엔 아시아가 핵심무대로 등장했고 경쟁의 성격도 미·중 패권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미사일 증강 미국에 중국, 러시아 반발

INF조약 폐기로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미사일 경쟁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INF조약 탈퇴 당일 “미국은 이미 이동식·재래식·지상발사형 순항·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로부터 16일 만인 지난달 18일 캘리포니아주 샌니컬러스섬에서 재래식 지상발사형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미 레이시온사(社)가 제조한 지상공격형 토마호크의 개량형으로 MK-41 발사대를 통해 발사됐다. MK-41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도 배치됐으며, 러시아가 INF조약 폐기 전부터 사거리 2400㎞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고 비난해온 발사대다.

미국은 추가 미사일 발사도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1월에는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계획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개발이 완료되는 대로 아시아에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에 맞서 ‘상응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면 똑같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미국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묶어 새로운 미사일 통제 조약을 체결하려는 시도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INF조약 탈퇴 당일 “어느 시점에 중국도 (새 조약에) 포함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 미사일은 방어용이며 미·러보다 핵무기 보유량이 적은 만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