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에 밀려 전통 완구 외면
2년 전 대규모 구조조정
체코 수도 프라하의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에서 상시로 열리는 레고 전시회.  한경DB

체코 수도 프라하의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에서 상시로 열리는 레고 전시회. 한경DB

덴마크 장난감 회사 레고가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2017년 9월 레고는 역대 최악의 매출 부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전 세계 종업원 1만9000명 중 8%에 이르는 14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레고는 “우리는 성장 모멘텀을 상실했고 결국 쇠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심은지의 Global insight]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 레고, 위기 극복한 비결은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 3일 열린 올 상반기 실적 발표회에서 레고는 연내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160여 개 점포를 새로 열 것이라는 계획을 내놨다. 전체 매장 수를 40%가량 늘리는 파격적인 확장이다. 2년 전 침체와 쇠퇴를 언급했던 레고 경영진은 이제 성장과 미래를 논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은 “세계 장난감산업이 쇠락하는 가운데 레고가 이 장벽을 깨뜨리고 있다”며 주목했다.

정보기술(IT) 기기가 확산하면서 블록쌓기 같은 전통 장난감은 핵심 수요층인 어린이들에게 외면당했다. 미국 최대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는 2017년 파산했다. 북유럽 최대 장난감 회사 탑토이도 지난 1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바비 인형 제조사인 마텔은 작년 2200여 명의 인력을 감원했다. 레고 역시 부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고는 타개책을 찾기 위해 기존 블록쌓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데 집중했다. 2017년 10월 임명한 닐스 크리스티안센 최고경영자(CEO)는 덴마크 전기모터 제조업체 댄포스 출신인 IT 전문가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을 확장하고, 레고 블록과 증강현실(AR)을 적용한 새 시리즈 등을 내놨다.

레고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난 147억8200만크로네(약 2조6300억원), 영업이익은 16.3% 줄어든 34억9800만크로네(약 4600억원)로 집계됐다. 매출 역성장은 멈췄지만 수익은 계속 줄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공격적인 매장 확대로 수익성 개선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레고의 도전은 ‘사양 산업은 있어도 사양 기업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산업은 일반적으로 성장과 성숙, 정체, 쇠퇴의 경로로 움직인다. 쇠퇴기로 넘어간 산업이 사양 산업이다. 성장기에 있는 기업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고 쇠퇴기 기업엔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혁신적 아이디어가 한물간 산업에 다시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의 카탈로그 판매업체 벨루나가 대표적이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이 작은 기업은 인터넷 기반 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도 실적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벨루나의 작년 매출은 1617억엔(약 1조7000억원)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많았다.

벨루나는 타깃을 세분화하는 전략을 짰다. 댄스 의상, 간호사 대상 물품 등 160종 이상의 카탈로그를 연간 총 400만 부 이상 발행하고 있다. 예컨대 간호복, 실내화 등 간호사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골라 살 수 있는 카탈로그를 내놓는 것이다.

사양 산업으로 꼽히는 패스트푸드 업계도 요즘 ‘가짜 고기’ 패티로 생기가 돈다. 가짜 고기 패티는 콩 등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한 육류 가공품이다.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다. 버거킹은 지난 6월부터 가짜 고기 패티를 넣은 ‘임파서블 와퍼’를 팔고 있다. 일명 ‘푸드 테크’ 기업인 임파서블푸드와 비욘드 미트 등으로부터 가짜 고기를 납품받는 식당 수 역시 급속도로 늘고 있다. 속한 산업이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절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성장의 기회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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