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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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4일 시위대의 요구인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공식 철회를 전격적으로 발표했지만 시위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범민주 진영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오는 주말 시위의 호응도가 향후 정국을 가늠할 척도가 될 전망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밤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한 후 시위대 대표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썩은 살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여질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 지미 샴 대표는 "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7명이 목숨을 버리고, 1천여 명의 시민이 체포되고, 71명이 폭동죄로 기소된 상황에서 이번 발표는 너무 늦게 이뤄졌다”며 "진심으로 시민의 분노를 진정시키길 원한다면 경찰의 강경 진압을 조사할 독립 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간인권전선 관계자는 오는 15일 시위대의 5대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대규모 주말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밤 몽콕경찰서와 포람 지하철역에는 시위대가 몰려들어 최근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 대응 등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오는 8일에는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홍콩 인권민주 기도집회'를 열 계획이며, 해당 집회에서는 미국 의회가 논의하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촉구하기로 했다.

이 법안은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한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미국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금융 거래를 못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들 시위에 홍콩 시민이 적극적으로 호응할 경우 '송환법 공식 철회'라는 캐리 람 장관의 승부수는 실패로 끝났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반대로 호응을 얻지 못할 경우 향후 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범민주 진영과 달리 친중파 진영과 재계는 송환법 공식 철회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홍콩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의 스태리 리 주석은 시위대가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이번 양보에도 불구하고 폭력 충돌이 심해진다면 정부는 '긴급법'이나 '공안조례'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급법은 비상상황 시 홍콩 행정장관에게 시위 금지 등 비상대권을 부여하며, 공안조례는 계엄령 발동 권한을 부여한다.

다만 친중파 내에서도 이번 조치가 너무 늦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중파 의원인 폴 츠는 "이번 조치는 너무 작고, 너무 늦었다. 정치적 위기의 핵심은 이제 더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 아니며, 홍콩과 중국 본토와의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친중파 의원은 송환법 공식 철회가 우유부단한 조치로 여겨져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으며, 오는 11월 구의회 선거와 내년 9월 입법회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