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딩(My Dinh)은 베트남 하노이의 ‘한인 타운’으로 불리는 곳이다. 한식당과 마사지샵들이 즐비해 하노이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다. 얼마 전 미딩의 한식당에서 식사하던 중에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서로를 향해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만취한 듯, 주변의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관광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동석자(A은행 지점장)는 쯧쯧 혀를 차고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부쩍 많아진 하노이의 청년 백수들이에요. 베트남에 우리 기업들이 몰려온다니까 취업하겠다고 왔다가 일이 잘 안 풀린거죠”.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러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대(對)베트남 직접투자(신규+증액)는 698건, 17.6억 달러에 달한다. 투자 금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8% 감소했지만, 투자 건수로는 6.7% 증가했다. 김기준 KOTRA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은 “1년에 최소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한다”고 말했다. 하노이에 있는 한 은행 지점장은 “어지간한 대기업들은 베트남에 이미 발을 들여놨다”며 “요즘은 빨래방, 전기·배관, 인테리어 같은 다양한 중소 업체들이 베트남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취준생’들이 하노이에 몰려들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베트남의 경제 중심이 호찌민에서 하노이로 점차 이동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 중 상당수가 하노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취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노이 동북쪽 박닌성에 휴대폰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만해도 말만 사원에서 중간간부까지 대부분의 직원이 베트남 사람이다. 삼성전자 베트남단지 관계자는 “올해로 진출 11년째”라며 “효율성과 비용 등의 측면에서 현지화를 더욱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은행 중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신한은행 역시 하노이 지점장이 현지인이다. 중소기업들도 한국어에 능통한 베트남 대학생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취업하면 월급 등의 처우가 현지인과 비슷할 수 밖에 없다”며 “설령 취업이 된다고 해도 한국에서 중소기업 다니는 것보다 생활 수준이 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신규 취업을 위해선 넘어야 할 제도적 장벽도 꽤 높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 한국 청년들의 베트남 취업은 딱히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베트남 청년들의 취업 시장을 제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수출에서 외국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베트남에서 외국인들이 취업 비자를 받으려면 전문가임을 입증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관련 분야에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만 취업이 가능하다. 게다가 올해 개정된 노동법에 따르면 2021년 1월 이후 베트남 신규 취업자는 이전까진 면제됐던 고용보험료를 따로 납부해야 한다.

베트남 취업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K 무브먼트’라는 정부 프로젝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약 1년간 현지 대학에서 어학 등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뒤에 현지에 취업하는 ‘루트’다. 100% 취업률을 자랑하는데 연봉도 한국의 대졸 초임과 비슷하다. 이 프로그램엔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비롯해 검증된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의 ‘K 무브먼트’에 한해 관련 분야 3년 이상 근무 요건에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베트남에 대한 환상은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영업자들도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막상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은 손에 꼽을 수준이다. 한식당만해도 이미 포화상태다. 하노이시에만 한식당이 170여 곳이다. 하노이에 있는 한인이 대략 8만명 정도니 4700명당 식당 한 개 꼴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한식당은 특성상 한인 밀집지역인 미딩과 쭝화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며 “좁은 지역에 식당들이 몰리다보니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한인 타운의 식당가는 검증된 노포(老鋪) 몇 곳을 제외하면 간판이 수시로 바뀌는 곳이다. 해외이사 전문업체인 극동해운항공 관계자는 “베트남으로 오는 분들도 많지만 사업이 잘 안 돼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상당히 늘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올해부터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면서 자영업자들의 베트남 진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작년까지만해도 한국인에 대해선 1년짜리 상용비자를 쉽게 내줬는데 올해부터 장기 상용비자는 전면 중단됐다”고 말했다. 상용비자는 사업상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자다. 각종 모임이나 회의,무역 전시회에 참석하거나,협상과 계약체결 그리고 수출입과 투자 같은 중요한 사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크다. 베트남에 진출한 소규모 업체들은 1년 상용비자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베트남에서 활동해왔다.

올해 들어 베트남 정부는 상용비자의 기간을 3개월로 제한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에 공식적인 통보는 없었다”며 “배경을 확인한 결과 한국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주던 것을 철회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내 한국계 식당, 여행사 등은 실제로는 베트남에서 사업 활동을 영위하며 소득을 올린다. 하지만 세금을 제대로 내는 일은 많지 않다. 상용비자 제도를 악용한 세금 회피를 막겠다는 게 베트남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앞으로 베트남에서 식당을 열고, 가이드를 하려면 정식으로 노동허가증을 받고 소득에 대해선 세금을 내라는 얘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가 자국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이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베트남에서만 20년 가까이 거주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해외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 보고 듣는 베트남 얘기만 믿고 이곳에 오면 절대 안 됩니다. 베트남은 성공을 위한 특급 열차가 아니에요”.

박동휘=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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