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진스키 교수. 트위터 캡처
브래진스키 교수. 트위터 캡처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속죄하지 않은 것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한·일 갈등과도 연관된다고 미국의 전문가가 지적했다.

그레그 브래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역사·국제관계학 교수는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낸 ‘일본이 과거의 죄를 속죄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라는 기고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한·일 갈등과 관련, “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의 잔혹행위로까지 거슬로 올라가는 (최근)분쟁은 일본과 한국을 경제 전쟁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사태의 근저에 식민지 과거사를 둘러싼 견해차가 있다고 전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수십 년 동안 두 나라는 일본이 식민지 과거를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이 달랐다”며 “과거 잔혹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동아시아를 훨씬 넘어서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2차 대전 동안 일본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잔혹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1945년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점령했을 때 일본과 그 이전 희생자들의 화해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며 “미국은 공산주의 저지에 초점을 맞췄고 한·일의 역사적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도록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 존슨 행정부의 지원 속에 1965년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일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일본과 한국의 새로운 경제적 관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며 “일본은 한국에 총 8억달러의 (유·무상)지원과 차관을 제공했고, 한국 정부는 식민 지배와 전쟁 기간 잘못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배상을 받아낼 권리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 경제가 새로운 파트너십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으면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로 다투는걸 꺼렸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일본이 과거의 잔혹행위를 인정하는걸 피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무효화하는 등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박정희 정권 협정에 이어 2015년 그의 딸인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과 다시 위안부 문제에 이전처럼 결함을 지닌 합의를 맺어 비난이 들끓었다고 부연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합의는 소용없다며 한·일 기업의 기금출자 등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지만, 일본은 거부했고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도 같은 원칙을 반영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기회주의적인 한국의 지도자들은 인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일본이 공격하기에 편리한 목표라는 것을 발견했다”며 “역사적 분노를 살리고 유지하는 것은 유용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짚기도 했다.

일본에 대해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불성실한 노력으로 논란을 계속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이래 일본 지도자들은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성명을 수십 차례 발표했지만,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야스쿠니 신사 방문과 같은 행동이나 해명으로 이런 성명들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사회는 2차 대전 중에 자국 군대가 한 일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며 “독일과 달리 일본은 2차 대전의 만행을 교육하기 위해 공공 기념물이나 박물관을 짓지 않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전임자들보다 역사 문제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 그의 정부에서 더는 사과가 없을 것을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세기 초 일본이 단순히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배운 젊은 일본인들 역시 과거 행동을 사과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모든 경향은 국수주의적 대중의 기억을 강화하고 현재의 무역 분쟁을 악화시킨다”고 부연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무역전쟁이 지역 및 세계 경제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앞서 합의를 볼 가능성이 있지만, 분쟁이 해결되더라도 일본이 이웃들과 화해를 위해 더 일관되고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시아는 항상 다른 경제적 또는 군사적 위기에 불안한 상태로 근접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힘든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 것은 향후 번영을 제한할 것이며 나머지 세계도 그 결과를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