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장기전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3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전략을 수정해 장기전 태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5월 이후 약 2개월 만에 재개된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오는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협상을 다시 하기로 한 것 외에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중국은 자국 내 수요에 따라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늘리고, 미국은 구매를 위한 좋은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는 데만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무역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궁지로 몰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WSJ는 분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농부와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무역협상을 타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도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적극적인 내수 확대 정책을 통해 충격이 어느 정도 흡수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전역의 경제 상황을 점검한 당국자들은 경기부양책으로 올해 목표로 잡은 6~6.5%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상무부 산하 싱크탱크의 메이신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데 비해 중국 경기는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중국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사설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 개선 추세는 변함이 없고 외부 압력은 ‘뉴 노멀’이 되고 있다”며 “중국은 그 어떤 위험과 도전도 이겨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트위터를 통해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이 얻는 합의가 현재 협상보다 훨씬 더 가혹하거나 아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거칠게 경고한 것도 중국의 태도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중국 언론들은 9월 워싱턴DC에서 재개될 협상에 앞서 8월엔 실무진 차원에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1일 보도했다. 온라인 매체 펑파이는 “양측 협상단 실무진이 8월에 집중적으로 협상을 진행해 9월에 열릴 협상 대표들의 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관영 환구시보도 양국이 9월 협상에 앞서 서로 더 많은 선의를 가지려면 8월 실무협상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 장관은 상하이 무역협상에 대해 대면을 통한 소통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미·중 간 협력할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왕 장관은 “이번 협상은 아무리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이 있더라도 적절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도록 대면을 통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