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쿠바 국교정상화 물꼬 텄던 오르테가 추기경 선종

쿠바 가톨릭 지도자인 하이메 루카스 오르테가 알라니모 추기경이 82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아바나 대교구의 후안 델라 카리다드 가르시아 로드리게스 대주교는 오르테가 추기경이 26일(현지시간) 새벽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추기경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오르테가 추기경은 교황의 첫 쿠바 방문과 2014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등 종교적으로는 물론 국내외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이었다.

쿠바 마탄사스에서 설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오르테가 추기경은 캐나다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뒤 1964년 사제로 임명됐다.

당시 쿠바 공산정권의 탄압 아래 쿠바 가톨릭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때였고, 오르테가 추기경도 여러 성직자와 함께 1966∼1967년 1년간 노동 수용소에 보내지기도 했다.

오르테가 추기경은 1978년 주교로 임명된 후 1981년 아바나 대주교에 올라 2016년 물러날 때까지 아바나 대교구를 이끌었다.

미·쿠바 국교정상화 물꼬 텄던 오르테가 추기경 선종

쿠바 정권이 1991년 헌법에서 무신론 조항을 삭제하고 종교 자유를 점차 인정하면서 오르테가 추기경의 영향력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1994년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서임을 받았다.

쿠바에서는 30여 년 만에 탄생한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이후 차기 교황 후보로도 물망에 올랐다.

오르테가 추기경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을 조율한 것을 비롯해 2012년과 2015년까지 총 세 차례 쿠바에서 교황을 맞았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범 석방을 끌어내기도 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정부와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도 오르테가 추기경은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시 국교 정상화에는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막후에서 큰 중재 역할을 했는데 그때 교황과 미국·쿠바 정상간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 오르테가 추기경이었다.

가르시아 대주교는 이날 오르테가 추기경의 부음을 전하면서 "추기경의 성품과 지치지 않은 성직자로서의 열정에 대한 기억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부활할 것"이라고 기렸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