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미국계 학교 교사 30명 입국 비자 못받아…양국 외교전 확산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의 미국계 학교 교사 수십명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국 간에 외교 파문이 확산하자 러시아 외무부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국 측에 돌리고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자 기사에서 러시아 외무부가 미국, 영국, 캐나다 3개국 대사관이 운영하는 모스크바의 미국계 학교 '앙글로-아메리칸 스쿨' 교사 30명에게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학교 측도 학부모들에 보낸 서한에서 러시아 당국의 비자 발급 거부로 학교 운영이 심각한 차질을 빚을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에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 외교관과 기업 주재원, 개인 사업가 자녀 120여명도 다니고 있다.

러, 美 교사 비자발급 중단…"美가 '비자전쟁' 시작" 정당화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17일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모스크바 미국 학교 교사들에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미국이 지난해 먼저 시작한 '비자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러시아 측에 발급하는 것과 같은 수의 비자만을 미국 측에 발급하기 때문에 빚어진 사태라고 설명했다.

안토노프는 "러시아가 (미국 학교) 교사들에게 비자발급을 거부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단 한건의 비자도 거부된 바 없다"고 NYT 보도를 반박했다.

그는 미국이 2018년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과 그들의 가족들을 추방하면서 사실상 러시아와 비자 전쟁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양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행정기술요원들을 위한 비자 발급에서도 철저히 일대일(1:1)의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기도 사건과 관련해 자국에 주재하는 60명의 러시아 외교관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약 200명의 러시아인을 추방했다.

이에 러시아도 동수의 미국 외교관을 맞추방하면서 양국 간에 외교전과 비자 전쟁이 불거졌다.

안토노프는 미국 국무부에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는 교사, 요리사, 정원사, 운전기사 등의 행정기술요원은 상호주의 원칙에서 제외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했지만, 미국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여론전은 어떤 결과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먼저 근본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러시아 측이 오랫동안 앙글로-아메리칸 스쿨의 지위를 러시아 법률에 맞게 고치라고 제안했지만 미국 측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미국 대사관의 행정기술요원 자격으로 외교관 신분을 갖고 있지만 정작 학교 자체는 민간기업처럼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고쳐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자하로바는 또 지난 1949년 설립된 학교가 1990년대에 모스크바 시내 미 대사관 부지에서 현재의 모스크바 북쪽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러시아 측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존 헌츠먼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앞서 이날 앙글로-아메리칸 스쿨 교사들에 대한 러시아 측의 비자 거부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확인하면서 학생들이 양국 외교 게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외교부는 이 학교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헌츠먼 대사가 이를 숨기고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러 미국 상공회의소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사태 해결을 요청했다.

러, 美 교사 비자발급 중단…"美가 '비자전쟁' 시작" 정당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