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당 1인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정치적 역풍을 고려해 섣부른 탄핵 추진에 반대한 만큼 예상된 결과였다. 하지만 탄핵안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이 100명에 육박해 ‘트럼프 탄핵론’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이슈가 대선 국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날 트럼프 탄핵안은 펠로시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가 반대하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하원에 상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등 민주당 유색인종 의원 4명을 겨냥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인종차별 폭언을 퍼부은 게 결정적 계기였다. 탄핵안은 앨 그린 민주당 의원(텍사스주)이 단독으로 제출했다.

표결 결과 찬성 95명, 반대 332명으로 탄핵안은 곧바로 부결됐다. 찬성표는 모두 민주당에서 나왔다. 투표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232명 중 40%가 탄핵안에 찬성했다. 공화당 의원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 결과는 표면적으론 펠로시 의장의 승리다. AP통신은 “(확실한) 추가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민주당이 탄핵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막으려는 펠로시 의장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펠로시 의장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왔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하원과 달리 상원은 공화당이 100석 중 53석을 가진 다수당이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해도 상원에서 가로막힐 게 뻔하다. 둘째, 정치적 역풍이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이 결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탄핵’ 대신 ‘트럼프 퇴임 후 수감’ 노선을 내걸었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트럼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와의 공모 의혹과 이를 조사하는 수사기관을 방해(사법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표결 결과 ‘트럼프 탄핵’을 원하는 민주당 바닥 민심이 예상 밖으로 강력하다는 점도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 지도부의 주의 경고에도 많은 민주당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싶어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해석했다. 탄핵안을 낸 그린 의원은 “이건 스프린트(단거리 경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며 자신의 노력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탄핵안 부결 뒤 기자들과 만나 “방금 탄핵에 반대하는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며 “그것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