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2차 보복을 준비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아베 정부는 오는 21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출 규제에 찬성한다는 것을 무기로 삼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부가 시행 중인 한국으로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56%가 ‘타당하다’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15일 보도했다.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높은 것은 앞서 발표된 다른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7일 시행된 NHK 조사에서는 ‘적절한 대응’이라는 응답이 45%를 기록한 데 비해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답은 9%에 불과했다.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반응은 37%였다. TBS 계열 JNN 조사(6~7일)에서도 ‘타당하다’는 답변이 58%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부당하다’는 응답은 24%에 머물렀다.

일본은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 대리인이 압류한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을 현금화(처분)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다. 일본의 지한파 교수 중 한 명인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위해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는 조치는 아베 정부의 마지노선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의 야마다 다카오 특별편집위원은 이날 칼럼에서 “많은 일본인은 문재인 정부에 불신을 품고 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로 양국 간 불신이 뚜렷해지는 것은 오히려 양국 관계가 재출발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는 ‘미국에 노(NO)’를 말할 수 있는 일본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고 썼다.

아베 정부는 일본 국민 및 언론이 지지하고 있다고 보고 2차 보복 절차를 밟고 있다. 2차 보복은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우선 오는 24일까지 일본 기업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받는다. 하지만 이 절차 자체가 형식적이어서 아베 정부의 뜻대로 이뤄질 공산이 매우 크다. 일본 정부는 이후 각의(국무회의) 결정과 공포를 거쳐 21일이 경과하는 다음달 15일께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21일 참의원 선거 결과 개헌 찬성파가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면 아베 정부는 2차 보복에 그치지 않고 3차, 4차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분위기는 개헌 찬성 의석이 3분의 2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가 될 것으로 일본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